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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일본에 건넨 낮은 목소리

등록 2019.08.15 21:45

수정 2019.08.15 21:52

판소리 격언에 "귀명창 있고, 명창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명창은 소리를 제대로 들어 명창을 알아보는 청중을 가리킵니다. 귀 밝은 관객이 명창을 낳는다는 얘기지요.

"1 고수, 2 명창"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판소리 무대에서 으뜸은 북 치는 고수이고, 그 다음이 명창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듯 추임새 넣어가며 장단 맞추는 귀의 힘이 입의 힘보다 큰 법입니다.

그런데 한일 경제전쟁 와중에 정치권에는 귀명창은 안 보이고 저마다 떠들어대는 소리꾼만 넘쳐납니다. 하지만 전쟁은 입으로 치르는 게 아닐 겁니다.

"우리한테 진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전략물자는 손 한 줌(밖에 안) 됩니다… (미국 가서) 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제가 글로벌 호구가 되는데…"

문제를 풀어가야 할 통상외교 책임자의 말이 맞는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당에서는 느닷없는 일본 패망론이 만발했습니다. 

"일본 경제는 이미 망하기 직전… (아베정권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돌아가는 팽이…"

아베노믹스가 붕괴하고 일본 소재산업은 파산할 거라는, 치기 어린 전망도 잇따릅니다.

그러더니 도쿄올림픽 보이콧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이 요란한 소음의 시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도쿄올림픽은 우호와 협력을 다지고 공동 번영으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의 열두 척 배를 연이어 거론하며 대일 승전 의지를 다지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어조입니다.

그간 집권당이 한일관계가 총선에 미칠 영향을 저울질하고 반일감정을 부채질할 때도 국민은 오히려 냉정했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켰습니다. 서울의 한 구청이 무분별하게 내건 반일 깃발을 내리게 한 것도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한일관계에 관한 오늘 대통령 메시지가 안으로 정치적 선동을 가라앉히고 합리적 대일 정책에 전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목소리를 낮추면 상대방이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이 먼저 내민 손을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두 나라가 모두 이길 기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8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일본에 건넨 낮은 목소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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