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조국에게 묻습니다

등록 2019.09.10 21:48

수정 2019.09.10 21:56

시인은 스스로 죄인을 자처합니다.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그 독을 들고 아등바등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 크다. 내 독 깨뜨리지 않으려고 세상에 물 엎질러, 착한 사람들 발등 적신 죄, 더 크다."

시인은 살며 이웃에 폐 끼치기 일쑤였다고 뉘우칩니다.

또 어떤 시인은 "구치소 담벽을 끼고 산다"고 했습니다.

"구치소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을 뿐, 어떤 법 조항으로도 얽어 맬 수 없었을 뿐… 내가 그토록 오래된 미결수였다니…."

가진 것 없어도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허물도 날카로운 가시가 돼 가슴을 찌르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걸으면서 태연한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 조국 법무장관이 임명된 뒤 서울대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의 정의와 공정은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2년 전 들었던 촛불도 지금 제가 든 촛불과 본질적인 다름이 없습니다…"
"(조국 임명의 메시지는) 더이상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편법을 저질렀으면 교묘하게 회피하라, 비도덕적이라고 욕먹으면 적당히 사과하고 넘겨라…."

국민, 특히 젊은이들을 이렇게 깊은 배신감과 좌절, 분노에 빠뜨린 죄를 그저 허물이라 말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조국 장관이 어제 취임사에서 "허물과 책임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혁'이라는 단어를 열 번 말했습니다. 개혁 공평 공정 정의… 모두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정의는 독점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가 독점될 때 독선이 됩니다." 이 말은 권위주의시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지학순 주교가 남긴 강론입니다.

어제 오늘 여기저기서 공정과 정의가 뒤틀린 위선의 민낯을 봅니다. 딱하고 민망합니다.

그런데 조국 법무장관의 근엄한 얼굴을 보며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생각났습니다. 끝내 법무장관의 자리에 오른 것이 정의의 승리라고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온갖 세상일을 쾌도난마 하던 그 칼은 더욱 날카롭게 벼릴 것인지?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또 어떤 가치가 희생되더라도 국민은 그저 참아야 하는 것인지? 이런 질문들이 오늘 하루 종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9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조국에게 묻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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