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추석 전야

등록 2019.09.12 21:39

수정 2019.09.12 21:55

어릴 적 갑자기 열이 올라 앓아 누우면 꿈인 듯 아닌 듯 천장이 온통 구겨지고 물결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황도 통조림을 사다 떠먹여 주셨지요. 복숭아는 신열의 몽롱함도 잊게 할 만큼 달콤했습니다. 황도가 먹고 싶으면 열이 또 안 오르나,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혼자 그것도 객지에서 아플 때면, 어린 이마 짚어주던 어머니 손처럼 부드럽던 통조림 복숭아를, 서럽게 그리워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음식은 고향이고 그리움입니다. 평안북도 사람 백석은 삶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시를 음식에서 엮어내곤 했습니다.

그가 눈과 귀, 코와 혀로 되살려낸, 고향의 추석 전날 밤이 이 시 '고야'에 담겨 있습니다. '부엌에는 환하게 불이 밝고, 솥뚜껑이 들썩이며 구수한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조개송편, 달 송편, 죈두기 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 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 소를 먹으며 콩가루 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드문 풍경이 돼버렸습니다만, 가족이 모여 앉아 송편을 빚으면 모양이 제각각이었습니다. 모시조개처럼 앙증맞고, 보름달처럼 둥글고, 진드기처럼 쪼끄만 송편… 딸을 둔 어머니는 "송편을 곱게 빚어야 예쁜 딸 낳는다"고 슬쩍 타박하곤 했지요. 추석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으면 맛있는 반찬에 젓가락이 몰리며 부딪칩니다.

누군가 깻잎 절임을 한 장 떼내거나 김치가닥을 찢으려 하면 가족의 젓가락 몇 쌍이 다투어 달려들어 거듭니다. 서로 젓가락이 엇갈리는 것은,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둥근 두레밥상을 그리워합니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가족이 함께한 저녁 밥상, 잘 즐기셨습니까. 짧은 연휴여서 내일 아침 일찍부터 고속도로가 더 몸살을 앓겠지요. 그럴수록 가족이 저녁상 물리고 앉아 삶의 안온한 포만감 나누고 누리는 지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합니다.

9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추석 전야'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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