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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물러설 때를 안다는 것

등록 2019.10.02 21:48

수정 2019.10.02 22:28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가난마저 행복으로 여기며 살다 미련 없이 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박정만 시인이 떠나며 남긴 시는 딱 두 줄입니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하지만 세상에는 헛된 집착에 빠져 떠날 때를 놓치고 추해질 대로 추해진 뒤에야 퇴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옹호하고 응원하는 처세술이 청나라 말기 '후흑학' 이라는 겁니다. "하늘이 내려준 두꺼운 낯가죽과 시커먼 속마음을 써먹지 않으면 천하에 어리석은 일"이라며 후흑의 3단계 경지를 말합니다.

그 2단계가 낯이 두껍다 못해 견고해 다른 사람 공격에 미동도 안 하는 것이고, 최고인 3단계는 낯 두께와 속마음 색깔을 아예 알아볼 수가 없는 경지입니다. 무협지에 비유하면 내공이 절륜한 고수가 파리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백면서생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 바로 그 경지를 말합니다.

조국 장관은 그 동안 "물러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내가 기소되면) 고민해 보겠습니다." "책임감을 느끼겠습니다…"

그러다 어제는 자신의 위법은 언제 확인되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최종 확정판결이 나올 때"라고 답했습니다. 기소되고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대법원 판결 때까지 몇 년이 걸리든 장관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과거 조윤선 장관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을 때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느냐"고 꾸짖었던 그의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벼슬 버리고 고향의 가족에게 돌아간 도연명의 귀거래사 비슷한 말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제 식구를 돌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들을 보면 이 말 역시 얼마나 입에 발린 말인지 자명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국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 대신 귀거래사의 한 대목 돌아봅니다.

"인생길 잘못 접어들어 헤맸지만, 그다지 멀리 온 것은 아니다… 지난 세월 잘못 살았음을 깨달았다…"

10월 2일 앵커의 시선은 '물러설 때를 안다는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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