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한글날 돌아보는 국회 풍경

등록 2019.10.09 21:47

수정 2019.10.09 21:53

"감자, 고구마 같은 낱말을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려보면, 아, 구수한 흙냄새… 풀잎, 풀잎 하고 부르니까 내 몸에선 온통 풀 냄새가 납니다. 또 잠, 잠 하고 부르니까 정말 잠이 옵니다… 강아지, 하고 부르니까 딸랑딸랑 방울소리…"

시인이 새삼 감탄했듯 우리말은 오감을 일깨웁니다. 귀와 코, 혀를 거쳐 마음까지 스며드는 오묘한 매력을 가진 말입니다. 예순 개 나라, 백여든 곳 세종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이 무엇이냐고.

'사랑, 안녕, 아름답다, 별, 예쁘다…' 학생들이 꼽은 이 다섯 낱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바깥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들려오는 우리말은 어떤 것들입니까? 나날이 귀 따갑고 낯 뜨거운 말싸움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야, 너 뭐라고 얘기했어, 어? 어이, 이게 지금…"
"웃기고 앉았네, 정말…"

반말에 고함과 욕설이 일상어가 돼 버린 국회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19금딱지라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국민의 대표 국회의원이라면 아름다운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품격 있는 언어를 써 주기를 바라는 게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오늘도 광화문은 '조국 퇴진'을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찬 단어들이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마침 한글날,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세종대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요?

온 나라를 두 동강 내놓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게 만든 대통령과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잘 한 건 없습니다. 조국 사태 두 달 사이 집권당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 민심이 왜 부동층으로 떠다니는지, 야당은 뼈아프게 돌아봐야 합니다.

그저께 국회에서 모처럼 폭소가 터졌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조국 장관 덕분입니다.

"내로남불도 유분수지"
"내가 조국이야, 내가?"

여야 의원들이 너나없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만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마음은 슬펐을 겁니다. 요즘 말로 '웃픈' 현실이지요.

정치는 말의 기술입니다. 그리고 한글은 전 세계 어느 나라 말보다 아름답고 창의적인 언어입니다. 언젠가는 이 한글이 우리 정치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그런 거짓말 같은 날도 오겠지요?

10월 9일 앵커의 시선은 '한글날 돌아보는 국회 풍경'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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