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우연한 변명

등록 2019.10.17 21:45

수정 2019.10.17 21:53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일곱 살이던 시절, 마을에 세 살 위 정님이가 이사 왔습니다. 소녀는 발가락을 다친 그를 업어 개울을 건네주곤 했습니다. 발가락이 아물어 어머니가 더는 된장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그는 아픈 척 했습니다. 소녀가 마냥 좋았던 겁니다.

몇 년 전 어느 사학 설립자가 영장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석했습니다. 링거를 꽂고 침대에 누운 그야말로 중환자 행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영장이 발부되자 버젓이 두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플 때는 구속영장이 특효약"이라는 우스개가 나돌았고, 휠체어 타고 출석하는 기업 회장들을 가리켜 "체어맨이 아니라 휠체어맨"이라는 비아냥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시중에선 조국씨 동생이 화젭니다. 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갑자기 넘어져 허리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의사 출신의 검사를 부산에까지 내려 보내 그를 강제 구인했습니다. 그의 병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넘어졌다던 상가의 CCTV를 샅샅이 확인해야만 하는 수고로움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화면에서도 허리를 다쳤다는 바로 그 날 아픈 사람의 모습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의사 소견서와 그가 병원 안을 활보하는 영상까지 제출했습니다만 판사는 영장을 기각하면서 사유의 하나로 '건강상태를 들었습니다. 구치소에서 풀려날 때 그의 모습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 어, 어, 아픈 사람이에요. 아픈 사람이에요"

이런 그에 비하면 휠체어라도 타고 들어오는 재벌 회장들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돕니다.

그 엿새 뒤 조국씨의 부인 정경심씨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서류를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발급 병원이 정형외과였다는 사실만 있었을 뿐 누구의 책임하에 발급됐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서류였습니다. 더구나 이 서류는 질병 진단서가 아니라 단순한 입원증명서였습니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제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검찰 수사를 받는 한 가족에게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게 그저 우연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경심교수가 자신의 SNS에 올린 박노해 시인의 시 한 대목 인용하겠습니다.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10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우연한 변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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