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일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북한 지도자의 건축미학

등록 2019.10.23 21:48

수정 2019.10.23 21:50

"이제 그 소 한 마리가 천 마리의 소가 돼, 지난 빚을 갚으러 꿈에도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갑니다…"

1998년 정주영 현대 회장은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열일곱 살 때 소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했던 빚을 갚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 대에 열 마리씩 싣고 갔던 트럭 백 대도 북한에 두고 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소들은 죽어 사라졌지만 트럭들은 아직도 북한 땅을 잘 굴러다닌다고 합니다.

현대 마크를 떼낸 뒤 기업소에 나눠줘 요긴하게 쓴다는 주민들 증언이 있었지요. 방북 공연단이 북한의 요구로 가져간 접이식 의자 천 개를 두고 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듯 북한은 무엇이든 알뜰하게 재활용합니다. 폐쇄된 개성공단을 몰래 돌려 옷을 수출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거기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며 굳이 부인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의 우리 시설물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진다"는 말에서 짜증이 묻어납니다. 금강산 관광시설은 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의 결실이었습니다. 그런 정 회장과 금강산 사업을 김정일은 두 손 들어 환영했습니다. 지방에 있다가 정 회장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고, 기념사진 촬영 때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고 왼쪽에 섰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이 매우 잘못됐다"고 말해 결과적으로 아버지에게 손가락질을 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이른바 백두혈통 3대 우상화에 스스로 흠집을 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짜증의 대상은 분명 우리 정부 였을텐데 어쩌다 보니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잘 아시듯 북한의 어깃장은 우리 정부로부터 기대했던 경제지원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겁니다. 광복절에 우리 대통령이 남북경협을 통한 평화경제를 말하자마자 "삶은 소 대가리가 웃을 노릇"이라고 조롱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시정연설에서도 평화경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금강산 시설물 철거를 카드로 내밀었습니다. 이를 두고 정부 일각에서는 우리에게 대화 재개의 명분을 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런 '어거지 선의'라도 갖다 붙이고 싶은 우리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10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북한 지도자의 건축미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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