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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부모가 '100억원' 벌어도 받을 수 있는 청년수당이 리얼리즘?

등록 2019.10.24 15:43

수정 2019.10.24 15:59

◆"청년수당은 포퓰리즘이 아닌 리얼리즘"

박원순 서울시장은 23일 '청년·서울시장 타운홀미팅'에서 청년수당 확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수당 대상자를 기존 연 6500명에서 3년 간 최대 10만 명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수당 액수는 현재 기준인 월 50만원(최대 6개월, 생애 1번)과 같습니다. 월세도 월 20만원씩 줍니다. 청년임차보증금 대출 규모도 늘렸습니다. 이같은 '청년 복지 패키지'를 확대 추진하는데 앞으로 3년 동안 4300억원의 시 재정이 든다고 발표했습니다.

 

[취재후 Talk] 부모가 '100억원' 벌어도 받을 수 있는 청년수당이 리얼리즘?
23일 청년수당 확대 정책을 발표하는 박원순 시장 / 서울시 제공


당연히 '어떻게 예산을 마련할 것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박 시장은 '선심성 복지'라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대뜸 "청년수당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리얼리즘(사실주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미취업 청년들의 절박한 상황이 당장 돌봐야 하는 '현실'이라는 뜻이었겠지요. 하지만 청년수당의 추진 과정과 관리, 예산 집행 계획 등을 살펴보면 과연 치열한 고민 끝에 현실 감각이 있는 판단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부모가 '100억원' 벌어도 받을 수 있는 청년수당

서울시가 밝힌 청년수당 지급 기준은 '서울에 거주하는 중위소득 150% 미만의 소득자'이면서 '만19~34세의 졸업(고등학교 졸업 포함) 후 2년 지난 미취업 청년'입니다. 복잡하고 말도 어렵지요. 중위소득은 '총 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겨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을 의미합니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가구원 수 별로 중위소득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취재후 Talk] 부모가 '100억원' 벌어도 받을 수 있는 청년수당이 리얼리즘?
2018~2019년도 기준중위소득표(출처: 보건복지부)


2019년 1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월 170만 7000원입니다. 월 소득이 이 금액의 150%인 256만원 이하여야 청년수당 대상자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진짜 문제는 가족이 자녀의 취업을 적극 지원하는 우리 문화에서 부모의 재산정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대주 분리를 한 단독세대주로 건강보험료를 직접 내고 있다면, 부모의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청년수당 대상자가 됩니다. 세대주 독립을 한 뒤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해도, 건보료만 내고 있다면 청년수당을 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도의 수혜자가 실제로 '복지 사각'에 놓인 청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바만 해도 '4대보험' 가입되는데…취지 맞게 개선해야

그런가 하면 정말로 복지가 필요한 청년들은 기준을 맞추기가 까다롭습니다.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거나 계약직으로 일할 때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정상적인 취업 상태로 간주되어 청년수당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알바도 4대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알바와 같은 '초단시간 근로자'는 3개월 이상 근무할 경우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됩니다. 알바로 생계비를 버는 취준생들은 청년수당을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2018년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 청년의 44.1%가 사기업 취업을 목표로 했고, 30.5%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답했습니다. 알바로 당장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미취업 청년'으로서 여전히 구직 상태에 놓여 있는 겁니다. '청년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청년수당의 원래 취지에 맞게 알바 청년들의 진입장벽을 낮춰 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금 인출 사용'도 가능…관리 허술한데 "청년들 믿는다"는 박 시장

관리 실태도 허술합니다. 청년수당 50만원을 받으면 체크카드가 지급됩니다. 카드를 사용하면 사용 내역이 낱낱이 드러나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금을 인출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현금 인출보다는 카드 사용을 선호한다"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김영경 청년청장은 "청년들에게 현금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현금을 사용할 경우 영수증을 보관하게 하고, 불시에 표본조사를 해 증빙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든 '구직활동 목적'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청년수당 정보공유 단체 대화방에서는 "해외 사이트에서 게임을 결제했다", "20만원이 넘는 무선 이어폰을 샀다"는 자랑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30만 원 이상 결제시 구직활동 연관성을 소명해야 하는데,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며 게임기를 사고 해외 영업사원이 되려고 문신을 제거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취재후 Talk] 부모가 '100억원' 벌어도 받을 수 있는 청년수당이 리얼리즘?
서울시 청년수당 이용자 sns 단체방


박 시장은 이 문제에 대해 "서울시는 청년들을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청년수당을 단순히 구직 활동에만 쓰여지는 돈이 아닌 정부가 보장하는 '기본 소득'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3년간 총 4300억원의 청년복지 예산은 시민의 혈세입니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구직 능력 향상과 지원이라는 원래 취지를 더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쓸 수 있는 용처를 제한하고, 모든 사용 건수에 대한 의무 증빙을 하게 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정책 실효성 입증할 통계도 미비

청년수당과 구직 연관성에 대한 통계도 미비합니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의 효과가 입증됐다며 지난해 참여자 중 47.1%가 '자기 일을 찾았다'고 응답했다고 밝혔습니다. 83%가 '구직목표 달성에 매우 도움이 됐다'고 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당을 받은 청년들이 어느 회사에 취업했는지, 고용 형태는 어떤지에 대해서는 조사한 바가 없습니다. 김영경 서울시 청년청장은 "사실 청년수당의 정식 명칭은 '청년활동지원사업'이라며 취업률만을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전체 기간의 통계 자료는 없지만, 지난 5월분 60억원만 놓고 보면 10%도 안 되는 5억원만이 구직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청년수당은 현금 복지입니다. 사업 실효성을 입증하는 통계도 마땅치 않은데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포퓰리즘' 불식시키고 사업 취지 살리려면…

청년수당을 놓고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돈으로 젊은 층의 표를 사려 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금액을 지원해준다는 취지가 현실화된다면, 박 시장 말대로 '포퓰리즘이 아니라 리얼리즘' 복지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수천억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사업 성과를 내놓고 사용 실태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청년수당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목적에 맞게 잘 사용되려면 말이죠. / 신유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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