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불출마 합니다

등록 2019.10.25 21:49

수정 2019.10.25 21:54

시인이 백수건달로 시를 쓴다고 까불거릴 때 아내는 인분 통 짊어지고 수박밭을 일궜습니다. 보험을 팔러 20년을 떠돌다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아내는 골수이식 수술비가 2억 원이라는 걸 알고는 "우리 시인 거지 만들지 않겠다"며 숨어버렸습니다. 시인은 아내가 수술을 안 받으면 절필하겠다며 참회의 사부곡을 바칩니다.

"너의 피를 먹고 자란 시인... 피 한 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시를 쓰는구나…"

출사표만 신물 나게 쏟아지는 정치판에서 시인 같은 퇴장의 변을 남긴 이가 5선의 정창화 의원입니다. 15년 전 "아내의 병상을 지키며 빚을 갚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가난한 시골 총각에게 시집와 40년 동안 선거를 여섯 번 치르며 얼마나 고생했겠느냐"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재 1호로 영입했던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총선에 나가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거친 말로 남의 가슴에 못을 박곤 했던 표 의원이지만 귀거래사에서는 고민과 회의가 엿보입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정쟁에 매몰된 국회의 일원으로서 참회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민주당에서 처음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도 "정치의 한심한 꼴이 부끄럽다. 야당만 탓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이 발탁한 초선 의원이고, 다음 공천이 유력했고, 조국 문제를 다룬 법사위 소속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표 의원은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상대를 공격하다 우리에게 야기된 내로남불 시비가 가슴 아팠다. 법사위가 지옥 같았다"고 했습니다. 조국 사태 한복판에서 목격한 정치의 적나라한 실상이 두 사람의 행로를 바꾼 듯합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 속마음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내가 조국이야? 내가?"

법무장관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대통령 측근 의원도 이렇게 말합니다.

"제2의 조국, 뭐 이런 식의… 지나치게 인격적 모독을 가하는 것은…"

민주당에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는 사이, 한국당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불출마 의사를 밝히거나 비쳤던 의원들이 너도나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집권세력에 등을 돌린 민심이 갈 곳 없이 떠도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10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불출마 합니다'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