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전체

[취재후 Talk] 검찰개혁 결말은 '치킨쉬트(겁쟁이) 클럽'?…文정부 검찰총장들의 필독서된 책

등록 2019.10.29 16:12

수정 2019.10.29 16:36

[취재후 Talk] 검찰개혁 결말은 '치킨쉬트(겁쟁이) 클럽'?…文정부 검찰총장들의 필독서된 책

문재인 대통령과 문무일 前 검찰총장 / 연합뉴스

지난 5월 서울 서초동의 한 허름한 식당.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과 출입기자들이 마주했다. 사전에 공지됐던 정례 오찬간담회였지만, 분위기는 송별회에 가까웠다. 문 전 총장이 청와대와 틀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후임인사 하마평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문 전 총장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영어회화를 배운다던데 세계일주라도 할 생각이신가." 현안 대신 퇴임 이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문 전 총장은 대뜸 유학계획을 꺼냈다.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한다.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이 온통 일제 잔재여서…. 내가 중앙지검 총무부 검사할 때 일본 동경지검 배치표를 보니 우리랑 똑같더라. 특수부 명칭만 봐도 그렇다. 특별하긴 뭐가 특별하나. 죄지은 놈이 특별하다는 건가, 수사하는 놈이 특별하다는 건가, 아님 무슨 특별한 수사방식을 쓴다는 건가. 아마 유래를 찾아 전임자를 뒤지다보면 결국 전부 일제 잔재라는 사실에 도달할 것이다."

문 전 총장은 선배들의 과오와 검찰의 잔재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검사였다. 권력에 충성해온 과거에서 벗어나려면 인사독립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뜻에서 양복 재킷을 벗어 흔들며 "흔들리는 옷이 아닌 흔드는 손을 보라"고 임명권자에게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 즈음 문 전 총장은 사석에서 자주 한탄했다고 한다. 특유의 너스레를 섞어 "기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오류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먹히질 않는다. 우리가 워낙 잘못한 게 많아서"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 청와대의 후임인사 추진에 일찌감치 대외활동을 접어야 했던 문 전 총장은 대검찰청 간부들에게 이 책을 여러 권 사서 나눠줬었다.

 

[취재후 Talk] 검찰개혁 결말은 '치킨쉬트(겁쟁이) 클럽'?…文정부 검찰총장들의 필독서된 책
 


'치킨쉬트 클럽(Chikenshit Club).' 미국의 대안매체인 프로퍼블리카 기자 제시 에이싱어가 쓴 책으로 번역하면 '겁쟁이 클럽'이다. 저자는 미국 연방 검찰이 기소 실패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에 무기력해지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법무부는 10년 동안 일어난 법적 변화의 의미를 간파하지 못했다. 법 조항이나 정책 한 가지가 바뀐다고 해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피고인의 권리 회복은 분명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는 총체적으로 화이트칼라 기업 조사에서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검사가 사용할 무기가 상당할 정도로 무뎌지거나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기업에 대한 압력 수단과 영향력을 잃어버리자 정부는 기업을 조사할 때 기업의 협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법무부의 패배와 후퇴는 힘의 균형을 방어 변호사 쪽으로 이동시켰다.(치킨쉬트클럽, 제시 에이싱어/캐피털북스 224쪽)'

 

[취재후 Talk] 검찰개혁 결말은 '치킨쉬트(겁쟁이) 클럽'?…文정부 검찰총장들의 필독서된 책
윤석열 現 검찰총장 / 연합뉴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도 이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임 총장과 달리 번역서로 읽고 있다지만, 공수처 설치 등 논의에서 소외된 두 검찰 수장이 한결같이 이 책에 매료됐다는 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된 건 분명하지만, 본질적으로 기본권 침해를 담고 있는 수사권 자체가 몰아치듯 달성할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적어도 조직 내부를 향해 경고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다소 감정적인 집착은 2011년 펴낸 '검찰을 생각한다'의 들어가는 말 말미에도 잘 나타난다.

"사상 처음으로 검찰개혁의 의지를 가졌으나, 제대로 이루지 못함을 탄식했던 노무현 대통령께 이 책을 바칩니다. 2011년 11월 문재인" / 정동권 기자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