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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문재인 정부의 하산 길

등록 2019.11.08 21:47

수정 2019.11.08 21:52

물이 절반 담긴 컵을 보며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사람은 비관주의자일 겁니다. 거꾸로 "반이나 남았다"고 하면 낙관주의자겠지요. 그런데 이 컵의 물을 보는 시각이 훨씬 다양할 수 있다는 패러디가 온라인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를테면 물리학자는 컵이 가득찼다고 봅니다. 아래는 물로, 위는 공기로 차 있다는 것이지요. 회의주의자는 컵에 담긴 게 진짜 물 맞느냐고 하고, 허무주의자는 물도 컵도 다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상주의자는 어떨까요. 물이 컵 윗부분에 있고 아래는 공기로 차 있다는 꿈같은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 임기 반환점을 돕니다. 사람에 따라 "벌써 절반이 지나갔느냐"고 하거나 "아직도 절반이 남았느냐"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합니다. 정부가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모두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하겠다던 방침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겁니다. 그 명분이 무엇이든 국민에게 한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시행령 하나 고쳐서 밀어붙이는 그 용기가 놀라울 뿐입니다. 백년지계가 아니라 '교육 순간지계' 라는 말이 나올 법합니다.

정부가 북한 어부 두 명이 넘어 온 사실을 닷새나 쉬쉬한 끝에 슬그머니 돌려보내려다 들켰습니다. 청와대 관계자의 휴대전화 문자가 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알려졌고 통일부는 마지못해 경위를 발표했습니다. 송환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북한 눈치 보기의 또 하나 서글픈 사례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능력이 있느니 없느니, 청와대와 국방부, 국정원이 이리 저리 부딪히고 우왕좌왕하는 풍경도 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방위비 인상과 지소미아 파기 철회를 압박하고,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손을 내밀어 환담했다는데도 일본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그런가 하면 집권당의 씽크탱크에서는 모병제 검토가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불과 며칠새 벌어진 일만 꼽아도 이렇게 숨 가쁜데 지난 2년 반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산에 올라갈 때는 안 보이던 꽃이 하산 길에 비로소 보이더라는 시가 있습니다만, 정권의 내리막길은 꽂길 보다는 돌길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의 눈에는 아직 컵 안에 물이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 런지요?

11월 8일 앵커의 시선은 '문재인 정부의 하산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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