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만추, 그립다

등록 2019.11.29 21:48

수정 2019.11.29 22:02

샘터사 편집장으로 일하며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던 동화작가 정채봉. 그를 기리는 순천 문학관에 그가 갓난아기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가 유품으로 걸려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번도 엄마를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배냇저고리를 평생 간직했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화순 운주사는 민초들이 미륵불을 기다리며 돌부처 천 개를 세웠다는 천불천탑의 절입니다. 나란히 누운 한 쌍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 세상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정채봉이 맨발로 살며시 와불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가만히 불러봅니다. 엄마…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가을비 내리는 운주사를 찾았습니다. 비에 젖은 와불에 마음을 빼앗겨 20년 만에 시를 썼습니다. "두 와불이 비에 얼굴을 씻고, 하늘을 응시한다. 또다른 시공간을 꿈꾼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가을비는 누구나 시인이 되고픈 시심(詩心)을 부릅니다. 폐결핵을 앓던 쇼팽이 비 오는 늦가을, 적막한 마요르카 수도원에서 '빗방울 전주곡'을 썼습니다. 왼손이 음울하게 반복하는 건반음이, 땅에 떨어졌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 소리 같습니다. 가을비 같은 남자의 고독이 스며 있습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

그 11월의 끝자락입니다. 모레 전국에 만추의 비가 내리면 가을도 끝입니다. 오는가 싶더니 벌써 떠나가는 가을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유난히 하늘은 높고 푸르렀습니니다. 시인처럼 그리움을 부르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끝에는 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네.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도 없다네… 어머니 가슴 저리 깊고 푸르러"

11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만추, 그립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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