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9

[포커스] 김우중 세계경영 '빛과 그림자'

등록 2019.12.10 21:21

수정 2019.12.10 21:30

[앵커]
고 김우중 회장은 이병철, 정주영 회장과 함께 한국산업화를 이끈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속성장의 비결이 정경유착이었다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 다녔고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가고 했습니다.   

오늘의 포커스는 김우중 회장과 한국 재벌의 명암에 맞췄습니다.

 

[리포트]
"큰 나라를 만드는 세계 경영, 대우가 있습니다."

한때 대우는 40여개 계열사에 전 세계 600여곳에 법인과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었습니다. 31살 청년 김우중이 자본금 500만원으로 의류 원단 수출업체 대우실업을 세운건 1967년.

청년 사업가의 패기는 고도성장 시대와 맞아 떨어져 10평짜리 충무로 사무실은 '대우제국'으로 뻗어나갔습니다.

69년 한국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공격적인 M&A로 자동차, 조선, 전자제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켰습니다.

소년시절부터 여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그는, 신문 배달원 시절에도 '신용거래'를 터득하는 남다른 수완을 보였죠. "하루가 24시간밖에 안돼 억울하다"며 1년 대부분 해외출장을 다녔고,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메뉴는 늘 설렁탕 아니면 비빔밥이었습니다.

세계는 김우중을 '한국의 칭키스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80년대 말 동구 공산국가 몰락을 사업확장 기회로 포착해, 동유럽을 비롯해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에 대우 깃발을 꽂는 '세계 경영'을 본격화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김우중 신화'는 97년 IMF 외환위기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구조조정 대신 빚을 15조원이나 늘리는 공격 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하기 시작했고, 1999년 끝내 대우그룹이 해체됐습니다. 대우가 남긴 손실액을 메우는데 공적 자금 21조원이 들어갔고, 41조원의 분식회계도 드러났죠.

故 김우중 / 대우그룹 회장(2005년)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특히 대우 가족들에게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저는 참회하는 기분으로 사법 당국의 처분을 받겠습니다."

김 회장은 징역 8년6개월에 추징금 17조900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았죠. 김 회장이 별세하자, 검찰은 연대 책임을 진 당시 그룹 임원들을 상대로 추징금을 집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우의 고속성장 배경으로 거론되던 정경유착도 고인을 평생 따라다니던 꼬리표였죠.

정부가 재벌을 너무 규제한다며, 1992년엔 직접 대통령 출마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말년에 창년사업가 양성사업에 매진했던 그는 "과거의 나보다 더 젊고 패기넘치는 젊은이들이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되길" 소망했습니다.

故 김우중 / 대우그룹 회장 (2014년 8월)
"평생동안 항상 앞만 보고 성취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것이 국가와 미래세대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풍운아처럼 살다간 김우중. 그가 남긴 빛과 그림자는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뉴스9 포커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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