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김우중

등록 2019.12.10 21:47

수정 2019.12.10 21:52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나와 그때까지 봤던 것 중에 제일 높은 것… 거대한 짐승처럼 성큼성큼 걸어와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소설가 신경숙이 열여섯 살에 밤기차로 상경해 마주한 서울역 앞 대우빌딩은 압도적 도시문명 그 자체였습니다.

서울역에 내린 촌사람이 고층빌딩을 넋 놓고 쳐다보는데 누가 다가와 한 층 보는 데 백 원씩, 2천 5백 원을 내라고 합니다.

촌사람은 5층까지만 봤다며 5백 원을 주고는 서울깍쟁이 속여먹었다고 좋아하지요. 이 우스개의 주인공 역시 대우빌딩입니다.

1977년 마흔한 살의 김우중이 대우빌딩을 국내 최고층을 지어 올렸습니다. 열 평 사무실에서 창업한 지 불과 10년 만이었습니다.

이후 대우빌딩은 그가 자산 77조원, 재계 2위 대우그룹을 키워낸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구조조정 계획과 함께 거함 대우의 침몰을 알린 곳도 대우빌딩이었습니다.

그 30여 년 동안 김우중이 살았던 삶은 이 한 장의 사진에 압축돼 있습니다. 외국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은 채로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쪽잠을 자며 일 년의 3분의 2를 해외에서 보냈습니다.

새벽 다섯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일하며 '나인 투 파이브'를 거꾸로 살았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1분을 하루처럼 쪼개 썼습니다.

그러면서 딸 결혼식 하루, 교통사고로 숨진 아들 장례식 이틀만 쉬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옵니다.

김우중은 기적 같은 성공과 거짓말 같은 몰락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기업가 김우중'의 행로는 젊음들을 일깨우는 등댓불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세계화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대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 이라고 외쳤습니다. "돈을 벌려고 일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다 보니 돈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김우중에게 요즘 젊은이들 처지가 애틋했던 것일까요. 그는 만년의 삶을 청년 사업가 양성에 기울였습니다. "이 아이들이 잘되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기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광도 오욕도 다 떠나 인간 김우중'으로 기억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제는 화려했지만 고단했고, 영광과 좌절의 대명사로 남은 기업인 김우중을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12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김우중'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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