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메리 크리스마스

등록 2019.12.25 21:48

수정 2019.12.25 21:53

오드리 헵번은 여리면서도 우아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고고했습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한 별이 된 것은, 나이 예순에 은둔의 삶에서 나와, 굶주리는 아이들을 돌보면서였습니다.

그 무렵 22년 만에 영화에 나선 것도 출연료를 기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연기했던 천사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녀는 하늘로 돌아가기 두 달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두 아들에게 유언처럼 시를 들려줬습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거든 배고픈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라… 기억하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것이 네 팔 끝에 있다는 것을…"

크리스마스는 잃어버린 순수를 사람들 마음 속에 되살려줍니다. 정직한 삶 다짐하며, 낮고 어둡고 누추한 곳을 돌아보게 합니다.

강원도 횡성 산골짜기에 의자 없이 맨 마루만 깔아놓은 성당이 있습니다. 112년 전 성당 지을 때 송판 마루 그대로입니다.

순례자들은 한쪽에 쌓인 방석을 가져다 깔고 꿇어앉습니다. 고개 들어 우러르며 기도합니다. 한국인 신부가 처음으로 지은 풍수원 성당입니다.

2백년 전 박해 받던 천주교 신자들이 풍수원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고 옹기 구우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한 세기 지나 성당 지을 때도 나무를 베어 오고 옹기 가마에서 벽돌을 구워냈습니다. 강릉 양양 지역 신자들까지 보름 걸려 태백산맥을 넘어와 일손을 보탰습니다.

마침내 성당이 섰을 때 뜨거웠을 환희와 찬송이, 빛바랜 벽돌에 스며 있습니다. 오늘 그 외진 성당에도 위안과 평화, 축복과 은총이 넘쳤겠지요.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 동네 교회에서 새 나오던 풍금소리, 그 설렘을 기억합니다. 미움과 화 잠시 내려놓고 은혜와 겸양을 생각합니다.

슬픔 나누고 기쁨 더하는 성탄절입니다. 오드리 헵번이 들려줬던 시 '아름다움의 비결'처럼 저마다 마음 속에 배려와 나눔의 작은 촛불 하나씩 밝히셨을 오늘입니다.

12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메리 크리스마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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