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신년 기자회견 유감

등록 2020.01.15 21:49

수정 2020.01.15 22:43

영국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험프티 덤프티'라는 달걀이 등장합니다. 자만과 권위에 사로잡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채 담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캐릭터지요. 하지만 바람이 불면 금방 떨어져 깨지고 맙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부하'는 워터게이트를 파헤친 워싱턴포스트 두 기자 이야기입니다. 이 제목은 전래동요 '험프티 덤프티'의 가사인 '모두가 왕의 부하'를 패러디한 겁니다. 험프티 덤프티 같은 지도자, 닉슨을 에워싼 인의 장막을 뜻합니다. 그 가사를 그대로 따온 소설과 영화도 있습니다. '모두가 왕의 부하' 이 영화는 순수한 열정을 품고 정치에 뛰어든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기자의 눈으로 예리하게 추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고초를 겪은 조국 전 장관에게 아주 큰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인 보통 국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조국 사태로 어떤 마음의 고초를 겪었는지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 법원은 이미 조 전 장관의 죄질이 나쁘다고까지 밝힌바 있습니다. 대통령이 검찰을 향해 "선택적으로 수사하지 말라"고 한 것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집니다. 대통령 스스로 '계엄령 문건', '장자연', '버닝썬'에 이르기까지 특정 사건을 일일이 거명하며 강력한 수사를 지시한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사의 칼날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하자 선택적으로 열심히 수사하지 말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요? 대통령은 울산 하명수사 의혹을 질문 받자 "수사 중이어서 언급이 부적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감싼 조국, 그와 관련한 사건들도 지금 수사 중이고 재판 중입니다. 대통령은 협치가 되지 않는 건 국회 탓이고 심지어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는 언론 탓도 했습니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라는 것이고 신년 기자회견은 이를 위한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일부 발언들은 담장 위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험프티 덤프티'를 연상시킥에 충분했습니다. 1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신년 기자회견 유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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