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설 그리고 겨울비

등록 2020.01.27 21:48

수정 2020.01.27 21:52

중절모 쓰고 검정 코트 입은 남자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옵니다.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겨울비'를 패러디한 영상입니다. 영화 '매트릭스 쓰리' 한 장면 같기도 하지요. 마그리트의 이 초현실주의 작품은 날마다 잿빛 도시, 익명의 거리로 투하되는 현대인의 단조로운 일상을 말합니다. 원래 제목보다 '겨울비'라는 스산한 별명으로 잘 알려진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겨울비는 숨죽여 내립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오는 비 중에 '는개'라는 게 있습니다. 물방울이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가리킵니다. '늘어진 안개'가 줄어든 순 우리말이지요. 그리고 이슬처럼 내리는 이슬비보다 굵은 것은 가랑가랑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입니다. 그런가 하면 바람 없는 날 조용히 보슬보슬 내리면 보슬비, 조금 세게 부슬부슬 내리면 부슬비입니다.

'먼지잼'이라는 비도 있습니다. 겨우 먼지나 일지 않을 만큼 인색하게 오는 비를 뜻하지요. "멀리, 자정에 가까울수록, 구겼다 다시 펼치는 은박지 소리로, 겨울비 쏟아집니다…" 계절의 시계가 단단히 고장 났는지 때 아닌 한겨울 비가 밤늦도록 전국 곳곳에 옵니다. 진종일 속으로 우는 소리를 냅니다.

그렇게 추적추적 내린 비가, 설 연휴 마지막 날 고향집 나서 귀가하는 걸음들을 붙잡았습니다. 그래도 부모님 뵈러 가느라, 뵙고 오느라, 차 밀리는 길에서 고생하는 행렬이 부러운 이들도 있습니다. 부모님 모두 떠나셔서 귀성할 일이 없어졌거나, 연휴에도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지요. 서울로 도시로 역류하며 고속도로를 메웠던 행렬도 이제는 잦아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잘 도착 했습니다" 전화 드려야 비로소 부모님은 조바심을 내려놓으십니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들, 단조로운 도시의 일상으로 비 오듯 투하되겠지요. 하지만 명절과 고향과 부모는 일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힘입니다. 이 비 그치고 한껏 맑아진 공기 들이마시며 종종걸음 쳐 다시 시작합니다. 계절이 세 번 바뀌어야 찾아올 추석을 기다리며… 1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설 그리고 겨울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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