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코로나 번호 인간

등록 2020.02.06 21:48

수정 2020.02.06 21:59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냉혹한 법 집행자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을 수인번호로 부릅니다.

"죄수 24601! 형기를 마쳤으니 가석방이다."
"내 이름은 장발장이오!"
"난 자베르다! 24601!"

264… 항일 시인 이원록은 2년 넘게 옥고를 치른 뒤 필명을 이육사로 지었습니다. 스스로를 치욕의 죄수번호로 부르며 저항 의지를 불태우는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번호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붙어 다니는 번호는 비인간적 낙인입니다.

김탁환의 르포 소설 '살아야겠다'는, 이름 대신 숫자로 불렸던 메르스 환자들을 추적합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나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고열보다 구토보다 두려웠던 것은, 지구에 홀로 남은 듯한 고독이었다"고.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번호 인간'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신종 코로나 확진 1번으로 등장한 지 열이레 만인 오늘 아침 23번까지 불어났고 격리자도 천명을 넘어섰습니다. 가족과 일터, 사회에서 격리돼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186번까지 갔던 메르스 때와 비교하면 대부분 말없이 참고 따르고 있습니다. 메르스를 옮긴 병원 방문사실을 숨기거나 자택 격리를 이탈해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확진자와 격리자들은 사실 애꿎게 감염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태를 키우는 것은 구멍 뚫린 정부 방역입니다. 태국에 다녀온 16, 18번 모녀만 해도 세 차례나 진료를 받고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병원 측이 검사의뢰서를 보냈지만 당국은 검사 대상이 아니라며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접촉자가 3백명을 넘겼고 병원을 사실상 봉쇄하는 격리 사례가 처음 나왔습니다. 정보 부족과 관리 미숙의 허점을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은 형국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전염병을 물리치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입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몸이 이상하면 지침에 따라 행동하면서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거짓 정보를 배척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아주 잘하고 있다"는 덕담을 주고받는 장면에 괜히 낯이 간지러워지는 건, 저만 그런 것인가요?

2월 6일 앵커의 시선은 '코로나 번호 인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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