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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진실의 입

등록 2020.02.07 21:49

수정 2020.02.07 21:55

명화 '로마의 휴일'은 다시 봐도 늘 달콤하고 따스하지요. 공주와 기자가 서로 신분을 속이며 함께하는 로마의 하루에 누구라도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이 가슴에 찔렸던 두 사람이 '진실의 입' 앞에 섭니다.

"거짓말을 하고 손을 넣으면 물어버린대요"
"당신이 해봐요"

겁을 잔뜩 먹은 공주를 놀리려고 기자가 손이 잘린 시늉을 하자 공주가 깜짝 놀랐다는 듯 그의 가슴을 때리는 달달한 이 장면 아직 기억하시는 분 많을 겁니다.

'진실의 입'은 기원전 4세기 하수도를 덮었던 대리석 뚜껑입니다. 그러다 중세 때 죄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는 서약을 받아낸 뒤 손을 넣게 하는 심문도구로 썼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봐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서면 겁이 나서 머뭇거리거나 차마 넣지 못할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사건 공소장 전문이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거기 앞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공명선거는 민주정치 구현의 요체이자 국가의 초석이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

공소장은, 대통령 친구 송철호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의 여덟 개 비서실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수사결과를 A4 용지 일흔한 쪽 분량으로 조목조목 정리했습니다. "송 시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라는 친분을 이용하려 했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송 시장 측근 수첩에서는 "VIP가 직접 출마 요청 부담으로 비서실장이 요청" 이라는 메모가 나왔다고 합니다. 추미애 장관이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해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공소장을 감추려 했는지 속마음이 훤히 다 들여다보입니다.

국민이 지켜보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던 조국 전 장관에게 "아주 큰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거개입 의혹은 "수사 중이어서 언급이 부적절하다"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의혹이 이제 사법의 엄중한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공소장에는 권력 심장부의 총체적이고 조직적인 선거개입 정황이 가득합니다. 이제 다시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입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2월 7일 앵커의 시선은 '진실의 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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