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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지도자의 자격을 묻다

등록 2020.02.11 21:49

수정 2020.02.11 22:03

"정부는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입니다"

지난 2008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쓰촨 대지진이 터지자 두 시간 만에 현장으로 날아갔습니다. 여진이 계속돼 위험하다는 만류를 뿌리치고 천 킬로미터를 오가며 구조를 지휘했습니다. 그가 "원 할아버지가 왔다"며 부모 잃은 아이를 달래는 모습은 온 국민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부가 너희를 돌보고, 공부하는 것도 봐줄게. 집에서 지내는 거랑 똑같은 거다. 울지 마라"

그는 2003년 사스 사태가 터지자 마자 한 달 사이 베이징의 학교 2백여곳을 돌며 일일이 상황을 챙겼습니다. 참모들이 감염을 걱정하며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내가 겁내면서 인민을 어떻게 안심시키겠느냐"고 했습니다.

반면 군사위 주석 직을 유지하고 있던 장쩌민은 얼굴을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등껍질 속에 머리를 숨긴 자라' 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결국 조기 퇴진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어제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 방역 현장을 찾았습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64일 만이고 첫 방역 지시를 내린 뒤로만 쳐도 52일 만입니다. 그나마 베이징 시내에 그쳤고, 2주 전 리커창 총리가 다녀온 우한에는 화상 통화만 했습니다.

시진핑은 지난주 회의에서 "사태를 감독하는 당과 정부 지도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마치 제3자처럼 말이지요. 그 이틀 뒤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통화하면서 "중국의 강력한 조치가 세계 공공안전에 거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이러스 발생과 확산을 감추고 축소해 세계의 공공안전을 뒤흔들어 놓고는 참 엉뚱한 자화자찬입니다. 그런 시진핑도 이제 더는, 들끓는 민심을 모른 척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의 뒤늦은 현장 방문은, 이른바 '시 황제' 일인체제가 흔들리는 신호라는 관측이 중국 바깥에서 잇달고 있습니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명패에 이런 글귀를 써두고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책임지는 리더십이 어디 재난 현장에만 그치는 것이겠습니까. 국가 지도자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그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긴 채 모른 척할 수 없는 자리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가?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2월 11일 앵커의 시선은 '지도자의 자격을 묻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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