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염치와 얌체

등록 2020.02.12 21:46

수정 2020.02.12 21:58

올해 서울대 달력 표지 한번 보시지요. 부끄러울 치(恥)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를 내세웠습니다. '치'자는 귀 이(耳)자와 마음 심(心)자를 합쳐 '마음이 부끄러우면 귓불이 붉어진다'는 뜻을 함축합니다. 서울대는 올해의 화두로 왜 '부끄러움'을 골랐을까요.

달력을 넘기면 4월에 다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치가 등장합니다. 이 염치가 변한 우리말이 얌치이고, 얌치가 다시 얌체로 바뀌면서 거꾸로 '염치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됐지요. 오징어도 한자말 오적어, 즉 까마귀를 잡아먹는 고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쓴 '오적어설'은 어느 어리석은 오징어 이야기를 합니다. 상어 같은 큰 고기가 달려들 때마다 오징어는 먹물을 내뿜어 시야를 가리곤 했습니다. 자꾸 그러다 결국 먹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다새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자기 재주만 믿고 감추려 들다가는 도리어 환히 정체를 드러내 화를 자초한다는 세상 이치를 말합니다.

추미애 장관이 취임 직후 단행한 검찰 인사는 윤석열 총장을 고립시키는 인사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임명한 서울중앙지검장은 청와대 의혹사건 기소를 건건이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그래도 검찰이 기소를 강행하자 궁색한 논리를 대며 공소장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요. 공소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이번엔 수사하는 검사 따로, 기소 여부를 결정해 기소하는 검사 따로, 분리해 운영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뭔가 계속 꾀를 내기는 하는데 이 꾀가 결국 청와대 사건에 국민의 시선을 계속 묶어두고 있습니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은 여전히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만 해도 한 차례 소환조사만 받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수사 여하에 따라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습니다. 기소단계에서 불리한 상황이 오면 다시 한 번 안전판을 만들어 보겠다는 속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요?

그렇다면 국민을 납득시킬 방법은 간단합니다. 수사와 기소 분리를 정 하고 싶으면 청와대 사건의 수사와 기소가 완결된 뒤에 하면 될 겁니다. 그 간단한 이치가 부정되고, 부끄러운 말을 들어도 귓불이 붉어지지 않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비정상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2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염치와 얌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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