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치와 재앙

등록 2020.02.24 21:50

수정 2020.02.24 21:57

오페라 애호가가 아니어도 다들 귀에 익으실 아름다운 노래지요. 오페라 '보헤미아의 소녀'에 나오는 아리아입니다. 그런데 연극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누구든 무대 근처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안 됩니다. 침몰 직전 타이타닉호에서 연주됐던 곡이어서 불길하다는 겁니다.

극장에 징크스가 많은 것은, 한순간의 방심이 공연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대사를 미리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금기도 있습니다. 모든 일은 끝나야 끝나는 것이니까요. 뱃사람들의 금기 중에는 선장이 조타실에서 앞만 볼 뿐 돌아서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배 앞에 언제 돌발상황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밤에는 조타실 불빛을 낮춥니다. 안이 환하면 눈이 침침해져 바깥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국가적 위기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확실히 끝날 때까지 방심과 낙관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직전까지 대통령과 정부, 집권당은 연일 섣부른 낙관론을 펼쳤습니다. 대통령은 "공포와 불안이 부풀려졌다"며 언론 탓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협회가 여섯 차례나 촉구한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조치에는 귀를 닫았습니다. 입국금지 국민청원에 76만 명이 참여하도록 끝내 입을 닫았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중국 외 최악 감염국이 됐고, 역시 입국금지를 머뭇거린 일본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한국 공포증, 이른바 코리아 포비아가 세계에 확산되고, 0퍼센트대 성장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심지어 중국이 우리를 걱정해주고, 중국 총영사관이 유학생들의 한국 입국 연기를 권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부는 국가적 재앙을 정치적으로 접근하면서 중국 눈치를 살피고 총선 계산에 정신이 쏠렸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 신뢰는 물론 재난 통제능력까지 상실하는 위기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 한 대목으로 맺습니다.

'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방, 지하실, 가방, 손수건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나타날 것이다'

 2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정치와 재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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