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결국 국민 탓

등록 2020.02.27 21:51

수정 2020.02.27 22:07

스페인 어느 해변 카페 메뉴판입니다. 맨 위 그냥 커피는 5유로인데, 그 아래 '포르 파보르' 커피는 3유로, '부에노스 디아스' 커피는 1.3유로입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손님이 주문하면서 '포르 파보르', 즉 '부탁합니다' 라고 하면 절반 가까이 깎아주고, 아침인사까지 하면 4분의 1 값만 받는 겁니다. 무례한 손님 탓을 애교 있게 한 덕분인지 다들 즐거워하고 주문 태도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 탓을 참 거칠고 황당하게 하는 게 우리네 정치판, 그중에서도 지금 정권 인사들인 것 같습니다. 청문회에서 '아내 탓' '가족 탓' 하는 건 기본이고, 부동산 투기논란을 아내에게 떠넘긴 청와대 사람도 있었지요. 뭐가 잘못됐다 하면 전 정권 탓하기 일쑤고, 20대 지지율이 낮은 것도 교육을 잘못 받아서랍니다. 심지어 오륙십대가 할 일이 없어서 험악한 댓글을 단다는 말까지 나왔지요.

코로나19 주무부처 수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코로나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했습니다. "감염원이 애초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는 뜻"이라고 자상하게 뜻풀이까지 덧붙였습니다. 재차 질문을 받자 "우리 한국인이 중국에 갔다가 감염원을 갖고 들어온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일련의 답변은 "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왕조시대 임금도 백성 탓만은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라에 재앙이 생기면 "짐이 하늘의 노여움을 샀다"며 자책부터 했습니다. '물, 즉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것을 무섭게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하다하다 이제는 서슴없이 국민 탓까지 하는 정부를 보며 할 말을 잊습니다. 중국 탓은 기어이 하지 않으려고 버티다 나온 얘기여서 더욱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격리된 우리 교민 집 대문에 봉인 딱지를 붙이고, 아파트 입구에 한국인 출입금지 통지문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관영신문 환구시보는 우리 외교장관 항의에 대해 "외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역"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 말이, 다름 아닌 우리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에 대한 뼈아픈 가르침처럼 들립니다.

2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결국 국민 탓'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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