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헌 매뉴얼, 새 코로나

등록 2020.03.02 21:47

수정 2020.03.02 21:54

 "터널이 무너졌다고요!"

영화 '터널'은 엉성한 우리 방재 체제를 신랄하게 꼬집습니다.

"대응 매뉴얼 줘봐. 최근 건 없니?" 

구조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에야 출동하지만 터널 설계도가 또 엉망입니다.  

"이거 엉터리야, 엉터리!"

일본은 편의점, 음식점부터 기업, 정부까지 온 나라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 때 그 허점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바닷물로 원자로를 식히는 대책이 매뉴얼에 없다고 포기해 피해를 키웠습니다. 외국 의료진은 일본 의사 면허가 없다며 봉사를 막았고, 외국 구조견 지원은 광견병 청정국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일본 정부는 전세기로 귀국시킨 국민을 관련법이 없다며 강제 격리하지 않았습니다. 크루즈선 처리도 매뉴얼을 뒤지며 허둥대다 사태를 키웠지요. 

우리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학계에서 사태 초기에 벌써 코로나 사태 장기화와 병상 부족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경증 환자 자택 격리와 중증 환자 선별 진료'를 권고한 것이 벌써 9일 전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증상이 없어도 병상을 내주는 메르스 지침을 고집하다 어제서야 의학계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 네 명이 숨졌고, 대구만 입원 대기자가 2천명에 이르러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의료진 동원과 방호복, 의료장비도 메르스 지침을 따르는 사이 의료진 부족이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극히 적은 이른바 '블랙 스완' 위기입니다. 이럴 때 낡은 매뉴얼만 붙잡고 있으면 관료주의, 행정편의주의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창의적 판단과 기민한 대처는 결국 방역 사령탑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가 누구인지도 잘 보이지 않는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강릉으로 돌아온 중국인 유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오히려 돋보입니다. 정부 방침과 달리 모든 중국인 유학생을 입국 즉시 검사하는 강릉시 자체 지침 덕분에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정부는 이제라도 방역에 대한 일체의 정치적 접근을 끊고, 전문가 의견을 최우선 지침으로 삼아 신속한 행정 지원에 집중하기를 간곡히 바라겠습니다.

3월 2일 앵커의 시선은 '헌 매뉴얼, 새 코로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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