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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총리도 '신빙성 없다'는 대북지원 협의했던 서울시와 통일부

등록 2020.03.13 11:27

[취재후 Talk] 총리도 '신빙성 없다'는 대북지원 협의했던 서울시와 통일부

지난 2월 2일 서울과 부산의 대형마트에서 마스크가 품절된 모습. 서울시와 정부가 마스크 등 방역물자 대북지원 관련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 2월초에도 이미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 조선일보DB

지난 11일 밤늦게까지 진행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미래통합당 지상욱 의원이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지상욱 / 국회의원 
"3월 9일에 한 언론에서 서울시가 마스크 등 28억원 상당의 물품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했다고 한다. 총리님도 보도 혹시 보셨습니까?"

정세균 / 국무총리
"못 봤는데요."

지상욱 / 국회의원 
"못 보셨습니까? 바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스크, 손 소독제, 검사 장비와 방역복 등 230만 달러어치 10(여)개 품목을 경의선 육로를 통해서 평양에 지원하는 방안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협의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 요건이 맞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요건이 맞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요건이 맞았으면 지원 한다는 그런 얘기로 들리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세균 / 국무총리
"제가 보기에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지 의원이 거론한 '서울시가 마스크 등 28억원 상당의 물품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했다'는 보도는 TV조선이 지난 9일 확인한 내용입니다.

지난달 서울시가 코로나19 진단장비와 예방물품 등의 대북지원을 위한 유엔 대북제재 면제 신청에 관련한 의견을 통일부에 문의했고, 해당 문의엔 마스크를 비롯해 손소독제, 검사장비, 방역복 등 약 230만 달러 상당의 10여개 품목을 경의선 육로를 통해 평양의대 등에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됐다는 기사입니다.

당시 통일부 관계자는 TV조선의 확인 요청에 "서울시가 정부와 협의했다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지원을 추진할 구체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현재 지원이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고, 서울시 관계자도 해당 사실을 인정하면서 "국내 코로나 상황이 악화하기 전인 2월 초중순경에 문의했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와 통일부뿐 아니라 다른 관련 부처와 청와대 등에도 이러한 사안이 공유가 됐고 상당 수준까지 진척이 됐을 것이란 취재도 있었지만, '확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도에선 제외했습니다.

그 외에도 해당 물품을 어떤 차량으로 운송하는지, 방역물자 지원 외 국제기구를 통한 현금 지원도 가능한지 등 내용도 함께 거론이 됐는데, 보다 구체적인 내용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협의가 진행된 시점도 취재된 내용과 서울시의 설명이 서로 맞지 않았지만, 서울시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서 '2월 초중순'으로 보도했습니다.

관련 보도를 보지 못했다는 정 총리는 지 의원에게 간략한 설명만 들은 뒤 곧바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보도에 대해 신뢰를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고, 정부와 지자체가 협의했다는 내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입장이 그 사이 바뀌었나 해서 통일부에 다시 문의를 했습니다. 공식 답변은 "서울시가 이러한 사안을 추진할 때 따르는 절차 등에 대한 문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재차 확인하면서 "다만 공식 추진할 단계로 진행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바이러스는 국경도 경계도 가리지 않습니다. 의료 기반이 취약한 북한에 전염병 예방과 방지를 위한 방역물자를 인도주의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 따르면 국경없는의사회(MSF)와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방역 목적의 대북지원을 위한 제재 면제를 이미 2월 하순에 승인 받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마스크 가격이 급등하고 의료진들이 방역복 등 각종 물품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 속에서 북한에 이러한 물자를 보낸다는 의견에 선뜻 동의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정 총리의 "신빙성 없다"는 답변도 비슷한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북한 사이 '접점'을 찾는 시도는 끊이지 않습니다. '대북 마스크 지원'이 막히니, '대남 마스크 공급'이 떠오릅니다.

범여권에선 "국내 마스크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70여개 봉제공장과 숙련된 노동자 3만여명이 투입되면 물품 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미국 등도 도울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북한의 자원으로 대미(對美) 지원을 하겠다는 '발상의 대전환'입니다. 통일부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당장 추진하긴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역병이 창궐하면 나라에 혼란이 옵니다. 국난(國難) 속에선 온갖 정략과 술책이 난무하기 마련입니다. WHO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선언 후 전세계가 패닉(panic)에 빠지면서, 이젠 공포와 혼돈이 인류의 영역으로 확대됐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운 천하무도(天下無道)의 때일수록 국민은 나라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신뢰할 만한 대응을 보여줄 때 가능합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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