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그래도 봄은 온다

등록 2020.03.18 21:48

수정 2020.03.18 21:55

"간편하게 잡숫고 저렴한 가격에…"

4백년 역사에 상인만 2만명넘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늘 붐비는 곳이 국수골목입니다. 좁고 긴 의자에 서로 어깨를 붙이고 앉아 단돈 4천원에 푸짐하고 맛깔진 칼국수를 즐기지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가곡 '동무 생각'의 무대 청라언덕도 대구에 있습니다. 백20년 전 언덕 아래 동산의료원에서 민중 의료에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집이 푸른 담쟁이, 청라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대구는 250만 대도시면서도 골목골목 걷는 운치가 여간 아닙니다. 청라언덕 내려와 10분쯤 걸으면 이상화와 서상돈 고택을 만납니다.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시인과,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애국지사의 혼이 깃든 곳입니다.

코로나의 재앙이 대구를 덮친 지도 한 달, 멈춰 섰던 일상에 봄기운처럼 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인적이 끊기다시피 했던 서문시장에 국숫집들이 문을 열었습니다. 손님은 드문드문해도 주인들 표정은 한결 밝습니다. 4년 전 잿더미가 돼버렸던 시장도 꿋꿋이 다시 일으킨 상인들인데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청라언덕 아래, 코로나 방역의 최전선 동산병원에도 완치돼 떠나는 사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병원을 향해 손 흔들어 인사하는 이 여성처럼 말입니다. 동산병원을 비롯한 의료진의 사투가 얼마나 험했는지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코와 이마에 흉터처럼 파인 보호장구 자국, 거기에 덕지덕지 붙인 밴드들… 누구보다 놀라운 것은 대구 시민입니다.

미국 ABC 기자의 현장 취재기에 그 경이로움이 가득합니다.

"패닉상태를 찾아볼 수 없다. 환자수용을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군중도 없다. 대신 절제심 강한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다..."

시민들은 대구 봉쇄, 대구 코로나, 대구 사태 같은 말들에 상처 받으면서도 마음 다독이며 대구를 지켰습니다. 오늘 다시 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 마음이 무겁습니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차분하고 의연하게 맞서 나아갈 것입니다. 청라언덕에 이제 곧 백합이 피듯, 빼앗긴 들판 달구벌에도 봄은 옵니다. 그 달구벌의 봄볕은 대구 사람들의 절제와 인내, 이웃사랑 같은 온기가 더해져 더더욱 따사로울 겁니다.

3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그래도 봄은 온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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