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겨울이 온다

등록 2020.04.07 21:55

수정 2020.04.08 17:06

바티칸 교황청의 경비병 눈빛이 매섭습니다. 이채로운 중세 복장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비병들은 5백년 전부터 스위스에서 데려오는 용병입니다. 16세기 부르군디 공국의 로마 침공 때 용병들은 넷 중에 셋, 백쉰명이 전사하면서 끝까지 교황을 지켜냈습니다.

그 뒤로 교황청은 충성스럽고 용맹한 스위스 용병만을 고집해왔지요. 스위스 용병의 신화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키다 8백명 전원이 몰사한 프랑스혁명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스위스 루체른의 명물, 이 '빈사의 사자상'이 바로 2백만 용병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합니다.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가 넘는 최고 부자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리는 유럽의 빈국이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릴 길이 없는 남자들은 용병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쓰라린 역사 때문이었을까요?

4년전 모든 국민에게 월 3백만원씩 주는 기본 소득 법안 투표에서 국민 다섯 가운데 넷이 반대해 부결시켰습니다. 공짜 돈이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결국 세금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의 현금 선심 경쟁이 점입가경입니다. 통합당이 전 국민 50만원 지급을 들고 나오자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모든 가구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맞받았습니다. 청와대, 정부와 함께 결정했던 70% 지급을 여드레 만에 뒤집은 겁니다. 

이쯤이면 서로 베팅을 치고 받는 포커판이 따로 없고, 그 옛날 고무신, 막걸리 선거가 다시 생각날 지경입니다. 물론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긴 합니다만 나랏돈이 정치인들 쌈짓돈은 아닐 겁니다.

작년 우리 나라 빚은 사상 처음 천 7백50조원에 육박했습니다. 늘어나는 속도도 공포스러울 지경입니다. 국가가 지는 빚은 결국 국민의 빚입니다. 재난 지원금 역시 대통령이 주는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주는 것도 아닌 우리 스스로 나중에 갚기로 하고 먼저 당겨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ㅋ


포퓰리즘은 정치인과 국민 모두에게 마약과 같습니다. 한번 중독되면 심신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좀처럼 끊기 어렵습니다. 그 끝이 어땠는지는 이미 여러나라가 확실하게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들어섰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얼마나 길고 어두운 겨울이 기다릴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새 봄이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겁니다. 책임을 아는 정치인이라면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국민들도 결국 그런 지도자를 선택할 겁니다.

4월 7일 앵커의 시선은 '겨울이 온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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