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꽃은 죄가 없다

등록 2020.04.08 21:54

수정 2020.04.08 22:10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나비 하나 날지 않던 나의 가슴에 재개발 해주세요…"

요즘 부쩍 많이 듣는 노래지요? 삭막한 가슴에 꽃 피고 나비 찾아오게 당신의 마음을 심어달라는 사랑의 하소연이 이렇게나 경쾌할 수도 있군요. 그렇듯, 세상에 무심코 하찮게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봄이면 다들 꽃놀이 간다고 야단이지만 시인은 뜰에 핀 씀바귀 꽃에서 우주를 봅니다.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 조그만 씬냉이 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 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미당의 명시처럼, 한 송이 꽃에는 소쩍새 울고, 천둥 치고, 서리 내리는, 숱한 인연과 고난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꽃 심고 가꾸기는 일년이지만 꽃 보기는 열흘' 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정성 들여 가꾼 봄꽃을 갈아엎는 무참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삼척시에 이어 서귀포시가 유채꽃길 10km와 유채꽃밭 10만 제곱미터, 3만평을 트랙터로 밀어버렸습니다. 농부들이 눈물을 삼키며 무 배추 양파 밭을 갈아엎는 건 봤어도, 살면서 이런 풍경은 처음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말라고 사정하다 못해 그랬다지만 사람이 죄지, 꽃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여기 말고 싹 갈아엎어 달라는 데가 또 있습니다.

"내 맘에 박자를 좀 넣어줘요. 쿵 찍으면 딱을 할 게요…"

요즘 여야 가리지 않고 너도 나도 이 구애의 노래를 틀어대며 '쿵 찍어 달라'는 선거판입니다. 그런데 선거판이 황당한 선거법으로 뒤죽박죽 돼버린 채, 코로나와 선심 경쟁만 있고 민생, 개혁, 미래가 안 보이는 3무 선거판입니다. 그래도 한 표를 손에 꼭 쥔 유권자들은 다들 보는 눈과, 품은 생각이 있을 겁니다.

글자를 몰라도 씩씩하게 투표하러 가시겠다는 시인의 옆집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맨 위 칸을 콕 찍으라고? 이번에는 바로 아래 칸 찍어야 한다고? 이러지들 마라… 이래 봬도 투표 경력 수십 년이다. 나도 다 생각이 있다."

4월 8일 앵커의 시선은 '꽃은 죄가 없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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