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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안내견 출입금지, 대한민국 국회

등록 2020.04.20 21:48

수정 2020.04.20 21:59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퀼'입니다. 실존했던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일생을 따스한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주인을 만나 믿음과 애정을 나누고, 살날이 며칠 안 남은 주인과 마지막 산책을 합니다.

안내견은 주인을 더 잘 모시려고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생후 한 달 반 만에 어미와 떨어져 인간과의 교감을 배웁니다. 사람 음식에 맛들이면 길 가다 냄새에 홀릴 수 있어서 평생 불고기 한번 못 먹습니다. 불임수술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늘 복종만 하는 건 아닙니다. 주인이 위험한 길을 가려 하면 명령을 어기는 '선의의 불복종'도 불사합니다.

안내견은 지하철과 여객기에 탈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주인이 학교를 다닌다면 수업 도중 이렇게 숨죽여 앉아 있곤 하지요. 주인 따라 학사모를 쓰고 명예 학사증을 목에 거는 것도 이제 드문 풍경이 아닙니다.

그런 세상에서 여태 안내견을 막는 곳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전례가 없다며 다음 달 등원하는 시각장애인 김예지 당선인의 안내견 동반을 허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회는 2004년 첫 시각장애 국회의원이었던 정화원 의원의 안내견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로는 "회의 진행에 방해되는 물건을 반입해선 안 된다"는 국회법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안내견은 회의진행에 방해가 되는 '해로운 물건' 취급을 당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은 1996년 한국 장애인 학생이 입학하자 유일한 장애 학생인 그를 위해 대학원 출입문을 모두 자동문으로 바꾸고 컴퓨터실에 장애인 전용석과 전용 컴퓨터를 마련했습니다. 이 소식은 국내에 전해져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시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뒤로 많은 대학이 단 한 명의 장애 신입생을 위해 강의실, 도서관, 화장실, 기숙사를 개조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국회만 아직 딴 세상이었던 모양입니다. 공공장소와 대중교통에 안내견 출입을 보장하는 장애인복지법, 역시 국회가 만들었으니 그들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기도 하고요. 사실 이 문제는 규정이니 관행이니를 따져서는 안 되는 기본적 인권의 문제입니다.

이번에 비판이 일자 국회가 뒤늦게 허용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는 합니다만, 우리 정치가 국민들의 기본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을 겁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4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안내견 출입금지, 대한민국 국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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