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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로 옥고' 장준하 유족에 7억8천만원 국가배상 판결

등록 2020.05.13 19:19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자로 수감된 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김형석)는 장 선생의 자녀 등 유족 5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이들에게 약 7억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1호 발령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국민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행해진 것"이라며 "실제 피해를 본 장 선생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단순히 긴급조치 발령에 그쳤다면 국민에 대해 정치적 책임만 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위반 행위에 대해 수사·재판·형의 집행 등이 예정돼 있고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2015년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국민 전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장 선생의 장남 호권씨는 재심을 청구해 39년 만인 2013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장 선생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무효라고 판단했고, 헌법재판소도 2013년 위헌 결정을 했다.

장준하 선생은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다가 이듬해 긴급조치 1호의 최초 위반자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됐다.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이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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