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만병통치, 친일 딱지

등록 2020.05.13 21:47

수정 2020.05.13 21:52

삼국지 하면 많은 분이 떠올리실 무용담이 있습니다. 장판교 전투지요. 장비가 장판교 다리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는 사이, 조자룡이 단기필마 적진으로 들어가 유비의 아들을 구해냅니다. 조자룡은 쓰던 창이 무뎌질 때마다 적군에게서 창과 칼을 빼앗아 휘둘렀고, 거기서 나온 말이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는 속담입니다. 걸핏하면 뭔가를 전가보도처럼 꺼내 휘둘러대는 행태를 가리키지요.

김춘수의 명시 '꽃'은 후배 시인들의 패러디가 많기로도 유명합니다. 그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대상에 본질과 다른 엉뚱한 이름을 붙여, 붙인 사람의 의도, 이른바 프레임에 가두는 '작명의 폭력'을 꼬집습니다. 함부로 낙인찍고 딱지 붙이기는 특히 정치판에서 횡행하는 수법입니다. 본질로 향하는 시선을 가리고 다른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쓰는 수법이지요.

정의기억연대의 기부금 사용내역 논란이 커지자 낯익은 프레임이 하나 나왔습니다. 바로 친일 프레임입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친일 반인권 반평화 세력의 최후 공세"라고 했고 윤미향 당선인은 "보수 언론과 통합당이 만든 모략극"이라고 했습니다. 보수 언론과 통합당을 친일 적폐 세력으로 몰았던 프레임 속에 이번 사건의 진실을 가두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용수 할머니도 친일 세력이라는 뜻인가요? 지금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그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됐다"던 주장이 '친일 모략극'으로 옮겨갔습니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 문화혁명은 반인권 반인륜의 일대 소용돌이였습니다. '반동 반혁명'이라는 모자 씌우기만 하면 모든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과정이 무시됐습니다.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지난해 일제 청산 움직임을 "관제 캠페인이자 지극히 갈등적인 문화투쟁"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친일은 걸핏하면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딱지가 아닙니다.

꽃에게는 그 빛깔과 향기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고 불러줘야 비로소 존재한 그대로 바로 섭니다. 윤 당선인은 6개월간 탈탈 털렸던 조국사태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범죄 피의자가 검찰 개혁의 피해자로 둔갑하고 검찰과 언론이 적폐로 몰렸던 조국 사태를, 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5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만병통치, 친일 딱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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