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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느 경비원의 죽음

등록 2020.05.19 21:51

수정 2020.05.19 21:57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중에 반가운 것은 빗방울뿐이다. 눈이며 꽃잎이며 낙엽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다…"

얼핏 시처럼 들리지만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에 실린 탄식입니다. 고운 꽃잎도 아파트 경비원에겐 종일 쓸어야 하는 고된 일거리라는 얘기지요.

저자는 공기업에서 38년을 일하고 예순에 은퇴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로스쿨 학비를 대려고 4년째 임계장으로 일하는 사연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뜻합니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고다자'도 비슷한 말이랍니다.

그는 경비원 시절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다가 입주민에게 혼이 났다고 합니다. 수돗물을 세게 틀어 낭비한다며 "무릎 꿇고 빌어라"고 하더랍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잘라버린다"는 말을 듣다가 화단에 양동이로 물을 준 일로 그만둬야 했습니다.

이 책이 부쩍 주목받는 것은 어느 경비원의 죽음 때문입니다. 고 최희석씨는 보름 넘게 한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 협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휴대전화에 남겼던 육성 유서가 공개됐습니다.

"사직서 안 낸다고 산으로 끌고 가서, 나 100대 맞고, 이 XX야, 너 죽여버린다고…"

공포에 떨면서도 인격이 망가지는 마지막 한계까지 버텨보려 한 약자의 고통이 생생합니다.

"맞으면서 약으로 버텼습니다. 진짜 밥을 굶고 정신적인 스트레스 얼마나 불안한지 알아요?"

그의 두 딸도 추모식 때 바친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겁 많고 마음 여린 아빠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러면서도 여러모로 애써준 입주민에 감사했습니다. 최씨의 경비실에 주민의 분향 참배가 이어졌고 추모 글도 가득 붙었던 겁니다. 청와대에 최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청원한 이도 주민이었습니다.

사실 경비원의 몸과 마음을 짓밟는 주민은 극소수일 겁니다. 하지만 그 뒤에 주민 대다수의 무심함과 무관심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저부터 아픈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 역시 수십 년을 아파트에 살면서 그분들의 고통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배려했는지 반성합니다. 그분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라는 숙제를 남기고 또 한 분이 떠났습니다.

5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어느 경비원의 죽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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