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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원유철의 '나침반과 사과나무'

등록 2020.05.22 16:52

수정 2020.05.22 16:57

[취재후 Talk] 원유철의 '나침반과 사과나무'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5·26 전당대회' 취소와 '5월 29일 까지 통합당과 합당 결의'를 발표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 연합뉴스

얼마 전 의원회관에서 만난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자매정당이 참패하고 당 대표가 물러났지만, 원 대표는 '승장(勝將)'의 모습이었다.

"우린 이긴 정당이잖아요"

말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미래한국당은 비례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미래통합당과의 합당과 관련해 한국당 내에서 자꾸 딴 소리가 나온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던 터라 만난 김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합당 하긴 하실 거죠?"

원 대표의 말은 늘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다. 당연히 하겠다는 것이었다. 꼼수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는 의심을 받는 것도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원 구성 협상 참여나 국고보조금 같은 이득이 다소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 국민과의 합당 약속은 지키겠다는 취지였다.

주변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조언을 포함해, 많은 얘기를 해오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본인의 생각은 확고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심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갈 겁니다"

민심의 나침반은 원 대표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구글에서 '원유철 나침반'으로 검색하면 0.33초만에 7090개 결과가 뜬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진 게 사실이다.

통합당에 주호영 원내대표를 사령탑으로 하는 원내지도부가 구성되고, 한국당이 제시했던 합당 시간표에 마지막 단원도 가까워졌다. 한국당 주변에서 흘러나오던 '개문발차' 명분도 옅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원 대표의 '나침반' 주변이었다. 나침반 옆에 자석을 두면, 나침반은 북쪽이 아니라 자석을 가리킨다(누구나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실험으로 배운다). 주변에 자석이 있는데, 민심을 가리키는 줄 알고 따라가보면 웬걸, 영 다른 목적지다. 보수정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원인 중 하나도 주변에 너무 많은 자석이 나침반 바늘을 흔들었기 때문 아닐까.

한국당은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에서 원 대표의 임기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21일엔 통합당 연찬회에 김기선 한국당 정책위의장이 참석해 '합당 연기론'까지 제기했다.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원 대표가 대외적으로 했던 말과는 달리 '다른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져갔다.

원유철 대표는 오늘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본인 임기 연장을 위한) 26일 전당대회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원 대표의 임기는 29일 종료된다. 또 "29일까지 합당을 결의한다"고 했다. '29일까지 꼭 합당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위의장 사견을 전제로) 당내에서 9월 정기국회까지 한국당을 유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던 것보다는 한 발 크게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원 대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책임감 있는 자세로 국민들이 성원해준 만큼 성심을 다해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무슨 사과나무를 어디에 어떻게 심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이용, '서울' 1982년)라는 생각이라면 제대로 된 나침반이 필요할 듯하다.

"종로로 갈까요, 영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설운도 씨가 1984년에 부른 '나침반'은 잘못된 '나침반'의 결말을 예견했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사람은 간 곳이 없네"

가사 속 주인공은 결국 을지로 길 모퉁이에 혼자 남았다고 한다. / 김수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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