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왜들 이러십니까

등록 2020.06.02 21:50

이용수 할머니가 광복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딸을 못 알아봤습니다. 열일곱 살 딸의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사람이냐 귀신이냐" 묻고는 그대로 실신했습니다. 딸은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49년이 지나서야 부모님 묘소에서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할머니는 한없이 통곡하다 부모님께 이렇게 고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대한의 형제자매가 한을 풀어줍니다.”

하지만 한풀이는 오랜 세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지금의 집권 주체와 지지세력이 할머니를 떠받들었고 그 앞줄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2017년 대선 전날 대구 유세 연단에 모셔 이렇게 끌어안았고, 아베 보라는 듯 트럼프 국빈만찬에 초대해 인사를 나누게 했습니다. 행사마다 할머니 손을 잡고 걸으며 각별히 모셨고, 위안부 문제해결의 피해자 중심 원칙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가 "나는 30년 동안 재주 부리는 곰" 이었다고 털어놓자 일부 여권 지지자들의 낯빛이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에서 친일 모략극이라는 손가락질이 잇달고, 친여 방송인이 배후 공작설을 들고 나오더니, 열성 지지자들이 극단적 인신공격을 퍼붓기에 이르렀습니다. "노망 났다" "노욕이 추하다"는 혐오 발언에 "대구 할매"니 "대구스럽다"니 하는 지역 비하발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민주당 당원 대화방에는 할머니가 "일본군과 영혼결혼을 했다"고 왜곡한 글이 올라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달렸습니다. 피해자인 할머니를 두 번 죽이는 2차 가해가 몰아치고 있는 겁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운동가를 지키려고 피해자를 공격한다"고 했듯, 조국 사태와 닮은 양상도 눈에 띕니다. 갖은 찬사로 칭송하다가도 자기편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즉각 적으로 몰아세우는 행태 말입니다.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모셔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오늘 할머니들을 뵈니 꼭 제 어머니를 뵙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를 겨냥한 돌팔매질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어느 누구 두팔 벌려 막겠다고 나서는 사람 없는 현실이 슬프고, 또 슬픕니다.

6월 2일 앵커의 시선은 '왜들 이러십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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