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차라리 부끄럽습니다

등록 2020.06.03 21:47

수정 2020.06.03 21:54

어수선한 교실에 반장이 들어와 책상을 치며 소리칩니다.

"그만!"

친구들 손바닥을 때리고 복도에 세워 벌도 줍니다.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선생님 신임을 등에 업고 갖은 위세를 부리는 초등학교 반장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이 일러바쳐도 선생님은 반장을 감싸고돕니다. 하지만 반장의 위세도 담임이 바뀌면서 끝납니다. 새 담임에게 매를 맞고 도망치듯 학교를 떠납니다.

윤흥길 소설 '완장'은 저수지 관리인이 된 건달 이야기입니다. '감독'이라고 쓴 완장을 차면서 사람이 바뀝니다. 걸핏하면 사람을 패고 행패를 부립니다. 하지만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은 완장 뒤에 숨어 있고, 완장은 머슴 푼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늘 같은 벼슬인 줄 알고 살판이 나서 휘젓고 다니다 완장을 빼앗기고 마을에서 쫓겨납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30분쯤 재판을 받다 불쑥 일어나, 당 행사에 가야 한다며 재판 중단을 요구했답니다. 조국 아들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 재판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처음 나와 한 일입니다. 그런 요구가 얼마나 이례적이고 무리한 것인지는 변호사 출신인 최 대표 스스로가 잘 알 겁니다. 하지만 그는 "국민에게 입장을 말하는 게 더 빠른 순서" 라고 했습니다. 재판정에 서는 피고인에 아래 위가 없고 갑과 을도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도 그는 국회의원에 정당 대표니, 나는 여느 피고인과는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는 듯 합니다.

그는 비례대표로 당선된 직후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첫 재판에 출석하면서는 "이미 시민들의 심판은 이뤄졌다"고 했지요. 마치 재판부 들으라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검찰 법원을 담당하는 법사위를 지망했다고 합니다.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사양하는 것이 형사 피고인으로서 온당한 처신이 아닐지요. 그런 최 대표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 기관 개혁을 함께하자"며 각별한 당부와 신임의 표현을 전한 바 있습니다.

과거 어느 정권에서 노시인이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더이상 분노할 수 없다면 내 영혼 죽어 있는 것 아니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차라리 떠나자' 황당한 일을 벌이는 사람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얼굴이 절로 붉어지는 세상입니다. 6월 3일 앵커의 시선은 '차라리 부끄럽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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