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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미중갈등 격화 속, 외교부 "국제 환경 어렵지만 영향은 제한적"

등록 2020.06.04 18:38

수정 2020.06.04 19:33

통상 아주 큰 태풍이라도 방송 뉴스에서는 한두 달 전부터 태풍 보도를 쏟아내진 않는다. 태풍에 대한‘집중 보도’는 우리가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시작된다. ‘내일 혹은 모레 우리가 태풍의 영향권에 들 예정이니, 안전 조치를 철저히 하시길 바란다’는 식이다. 아무리 강력해도 아직 멀리 떨어져 있거나, 오다 소멸하거나, 경로를 바꿔 우리에 별 영향이 없다면 일반 국민들의 안전과 큰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정부는 ‘제7차 외교전략조정 통합분과회의’를 열었다. 미중 갈등 등 각종 외교적 ‘태풍’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본회의인 ‘외교전략조정 회의’의 사전 회의 성격으로, 물론 이날 답을 내겠다는 자리는 아니었다. 어떤 걸 위험한 태풍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어떻게 보고, 우린 어떤 준비를 시작할까. 회의를 마치고 나온 한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은 “아시겠지만”으로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지금 국제 환경이 어렵다. 그에 대한 상황 점검이 있었고, 저희들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다. 아직은”
‘국제 환경이 어렵다’ - 안다.
‘상황 점검’ - 이거 하려 모인 자리였지. ‘저희들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다. 아직은’ - ?

앞의 ‘국제 환경이 어렵다’와 함께 생각하면, 외교부 당국자의 말은 곧, ‘태풍이 위험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 영향이 제한적이다’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그럼 그 영향은 언제쯤 오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당국자의 답변이다.

“그런 부분이 같이 논의가 되어야 될 부분인 것 같고, 여기서 그런 것들을 다 논의하고 결론냈다고 보는 건 아닌 거 같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의 분석이다. ‘직접적 영향’이 계속 오는 상황이라고 분석하면서 “안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박 교수는 “외교적 수사로는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내부적 논의에서도 그런 결론이 났다면 심각해 보인다”고 말했다. 언제나 국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놓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도 “주변 정세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중국 압박’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어서도 경제 충격이 클 수 있다”고 했다. ‘심각한 파고’가 몰려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그나마 풀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 사안별로 ‘원칙대로’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박태호 전 외교통상본장장(현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국제 통상 부분에 한정해 “자유시장이나 자유무역 등 ‘원칙’을 가지고 뼈를 바르듯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통째로 뼈와 살을 한꺼번에 편 가르듯 자른 뒤, ‘이건 이것, 저건 저것’이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홍콩 보안법’과 관련한 미중 갈등에 대해서도 “G2가 블러핑하다 터질 수도 있는가에는 의문이 든다”며 “미중이 협상해 예외를 둔다든가 할 수 있고,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8일 해당 회의로 다시 돌아가 본다. 회의 모두발언에서 강경화 장관은 ‘최근 대외환경’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국가 간 인적·경제 교류 중단으로 일견, 시계가 멈춘 듯 국제사회가 고요해진 듯 보였으나, 국제 질서 변화의 흐름은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감염병 위기 극복을 위한 개별국가의 대응 역량과 국제사회의 공조 역량이 모두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기존 국제 질서를 지탱하던 규범들이 흔들리고 국가 간 관계에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제로섬 경쟁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각자도생’과 ‘제로섬 경쟁’이란 말이 눈에 띄었다. 박원곤 교수는 강 장관이 발언이 ‘가장 지배적인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어느 일방이 승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고, 이에 따라 각 나라가 각자의 이해에 따라 각자도생으로 나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란 것이다. 다만 그는 “한국하고는 좀 차이가 있다”며 “우리 역사가 분명하게 말해주지만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각자도생을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범철 센터장은 ‘각자도생’에 대해, 외교 전략 측면에서 신중해야한다고 말했다. '국제 환경의 측면'에선 미중이 자국 이기주의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제로섬 게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 적용'에 있어서는 미국은 전통적 동맹국가인 상황에, 객관적 중립에 서는 획일적 중립이 바람직한 전략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 규범이 흔들리고, 국가 간 관계가 변하는데, ‘각자도생’을 추구하게 된다면, 미중 사이에 낀 우린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자 살자”고 쿨하게 우리 길을 가기엔, ‘나랑 같이 가자”는 유혹이나 으름장이 계속되니. 또한 시간이 문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 기업이나 정부에 대해서 미국의 압력 강해지고 있어 과연 우리의 미중 간 줄타기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상당히 회의적 생각이 든다”며 “그렇게 중립 지대 회색 지대 남아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태풍 등 재난 안전 상황에 대비하는 올해 ‘재난 안전 상황분석 결과’는 지난 1월 3일 나왔다. 매년 되풀이되는 태풍 등 재난에 대한 국가 단위의 대비는 품이 오래도록 많이 드는 치수 공사 등도 있기 때문에 미리 연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28일 “어려운 국제 환경의 영향력 제한적이다”고 했던 회의 뒤 일주일이 지났다. 미중 갈등의 태풍은 어디쯤 왔는지, 아직도 우리는 그에 대한 영향권이 아닌지. 답은 크게 기대가 되진 않지만, 다시 묻기 위해 전화 돌린다. / 조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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