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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정부가 보듬지 못하는 아픔

등록 2020.06.07 19:44

수정 2020.06.07 20:10

농구공을 패스하는 학생들 가운데 유유히 들어오는 검은 고릴라,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죠. 하지만 이 영상을 보여주기 전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패스하는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더니, 거기에 집중하느라 절반 이상이 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유명한 실험에서 확인된 건 보고싶은 것, 그리고 보려는 것만 보는 인간의 습성입니다.

어제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천안함 유족 윤미연 씨입니다. 남편인 고 김경수 상사를 천안함에서 잃은지 10년이나 지났지만, 그의 얼굴에선 여전히 슬픔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보훈처가 천안함 유족을 초청자 명단에서 뺐다가 논란이 인 뒤에야 뒤늦게 초대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윤미연씨의 이런 슬픈 얼굴이 눈에 들어왔을 지 모르겠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천안함 용사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윤미연씨는, "이런 대우를 받고 참석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이들을 생각해 참석한다"고 했다지요. 윤미연씨는 남편을 떠나보내고도 마음으론 보내지 못한 심경을 이렇게 편지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보, 곧 돌아올 거라고 믿지 않으면 저희는 살 수 없어요. 아직 아이들이 어려 저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어요.

지난 3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아들을 잃은 백발의 노파가 문 대통령을 막아선 심정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윤청자 / 故 민평기 상사 모친
"대통령님, 대통령님. 이게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문재인 대통령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 아닙니까."

윤청자 / 故 민평기 상사 모친
"여태까지 북한 짓이라고 진실로 해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

문재인 대통령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46명의 장병이 희생된지 10년이 지났고, 국제사회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냈는데도, 왜 이 노파는 경호까지 뚫고 대통령에게 이 질문을 해야만 했을까요. 걸핏하면 우리를 향해 삿대질하는 북한에 매달리느라 순직한 장병들의 목숨 값을 점점 소홀히 할 때, 그래서 마지못해 옆구리 찔러 절받기 식으로 유공자 대접을 받을 때, 유족의 가슴은 또 한번 찢겨 나갑니다.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정부가 보듬지 못하는 아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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