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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김종인이 털어놓은 '노태우 핵개발 비화'…"자금조달 관여했다"

등록 2020.06.10 10:02

수정 2020.06.10 10:37

[취재후 Talk] 김종인이 털어놓은 '노태우 핵개발 비화'…'자금조달 관여했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앞줄 앉은 이)가 취임 준비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은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과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 조선일보 DB

1990년경 어느날, 노태우 대통령이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하지 않겠어?"

대통령의 어투엔 이미 결심을 단단히 굳힌 뉘앙스가 느껴졌고, 군사·안보 쪽에 경험과 식견이 훨씬 많은 대통령에게 경제수석이 딱히 반박할 방법은 없었다.

대통령의 '결심'에 핵개발 준비 작업이 본격 추진됐다. 안전기획부장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 극소수만 아는 상태였지만, 관련 기관에 재정 지원이 추진될 만큼 상당히 구체화된 내용이었다.

극비리에 추진된 핵개발을 증언한 사람은 다름아닌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난 3월 펴낸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30여년 전 상황을 자세히 기록했다.

김 위원장은 "어디에서도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 없는 이야기"라면서 "이제는 '비밀 해제'가 됐다는 생각으로 고백할 사건"이라고 공개했지만, 출간 당시 이를 자세히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앞서 안기부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민자당 서수종 의원이 1994년 "노태우 대통령 임기말 1년 6개월전쯤 우리 국방을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징후 등 때문에 핵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 등으로 준비를 해왔다"고 말한 바 있지만, 당시 핵개발에 직접 관여했던 인사가 이를 구체적으로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박정희·전두환 정부 당시 핵개발 비화는 여러 인물을 통해 수차례 알려졌고,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돼왔다. 전문가들은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유명한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차원에서 핵개발이 추진된 내막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드문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취재후 Talk] 김종인이 털어놓은 '노태우 핵개발 비화'…'자금조달 관여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가운데)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 "재정 일부 활용해 은밀히 도와라"

김 위원장이 설명한 당시 정세와 배경은 이렇다.

"우리가 핵개발을 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미국이 가만있지 않으리란 것은 너무도 자명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핵확산을 막기 위해 기존 핵무장국의 보유만 인정하는 일종의 '의도된 불평등'을 추구해왔고, 그런 논리에서 핵확산방지조약(NPT)이 만들어져 준수돼왔다.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박정희가 죽으면서 그런 계획은 중단됐는데, 뒤이어 집권한 전두환은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핵개발 의지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뜻을 워싱턴에 전했다. 태생에 한계가 있는 정권이다보니 이런 부분에 있어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노태우 대통령이 핵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그것이 몰고 올 국제사회의 파장을 그리 심각하게 예상하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자신이 핵개발에 관여한 이유에 대해선 "자금 조달 때문"이라며 "외부에서 눈치 채지 않게 재정의 일부분을 활용해 핵개발을 추진하는 부서를 은밀히 도우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했다.

기술 개발은 원자력연구소(현 원자력연구원) 몫이었는데, 소장과 연구원 일부만 알고 과학기술처 장관도 절대 모르게 하도록 조치했지만,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이 물리학자에 원자력 전문가인데다 워낙 두뇌가 비상해 원자력연구소에서 뭔가 이상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을 "최연소 박사 학위 기록까지 갖고 있어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렸던 분"이라고 묘사했는데, 해당 인물은 한국 원자력계의 상징적 학자로 이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등을 역임한 정근모 KAIST 석좌교수다.

김 위원장은 원자력연구소의 '이상한 상황'을 모른 척하지 않은 정근모 장관이 어느 정도 개발이 진척되는지 구체적인 사항을 자꾸 알려고 해서 "그를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상당히 난처했다"고 회고했다.

 

[취재후 Talk] 김종인이 털어놓은 '노태우 핵개발 비화'…'자금조달 관여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3월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


■ 전술핵을 향한 김종인의 '시선'

'노태우의 핵보유 도전'은 1991년 9월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이 보유한 전술핵무기를 철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김 위원장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 가입 때문에 뉴욕을 거쳐 멕시코를 방문 중이었는데, 갑작스레 그런 소식을 듣고 비상이 걸렸다"며 "미국이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우리가 핵개발을 계속 추진한다는 것은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모양으로 비치기 때문에 하릴없이 11월 노태우 대통령도 비핵화 선언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주민들을 굶주려 죽게 만들면서까지 비밀리에 핵개발을 계속했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처지가 됐다"며 "우리나라가 비밀리에 핵개발을 준비했던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감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가치관이 혼동을 빚던 시절에 내려진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전술핵의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촉구해 핵무장론을 반대해온 당내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무장을 할 수 없는 NPT 가입국이라 핵무장론과는 별개"라며 "꼭 핵무장을 하자는 게 아니라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우리도 상응하는 방위 채비를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18년부터 화해 국면을 유지해온 남북관계가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1부부장의 담화 이후 다시 경색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고, 민주당을 이끌던 김종인 위원장은 보수야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종인 위원장은 당내 '보수 색채'를 지우고 기본소득과 저출산(저출생) 의제를 선점해 이른바 '좌클릭'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북 문제엔 상대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온 김 위원장이 앞으로 핵무장론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어떠한 입장을 보일지도 여전히 관심이다.

김 위원장은 회고록에서 무모한 핵개발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향후 북한의 행보를 통해 우리는 무모한 핵개발이 한 국가를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 오늘까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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