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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법원의 수도승' 영장판사가 달라졌다…구구절절해진 기각사유, 왜?

등록 2020.06.16 14:35

수정 2020.06.16 15:28

[취재후 Talk] '법원의 수도승' 영장판사가 달라졌다…구구절절해진 기각사유, 왜?

 

지난해 11월 '생방송 투표조작'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프로듀스101 PD들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영장 발부와 기각 사유다. 빈 칸을 포함해 발부는 68자, 기각은 101자였다. 과거 영장전담 재판부를 거쳐간 판사들도 대부분 발부는 물론, 기각했을 때도 100자 안팎, 많아야 200자를 넘지 않았다.

장황해진 기각사유…"여론 신경쓰는 탓"

그랬던 영장판사들이 달라졌다. '서울역 묻지마 폭행' 피의자에 대한 1차 기각 당시 1167자에 이어, 2차 기각에서도 713자 사유를 내놓았다.

한 문장 정도로 끝냈던 기각 사유가 장황해지기 시작한 건 2년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전후해서다. 2018년 9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구속영장 기각사유는 3600자 수준이었다. 이듬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김은경 전 장관의 영장 기각 때 500자에 육박한 건 그에 비하면 애교에 가까웠다.

법조계에선 기각 사유가 장황해지는 건 절제된 수사권에 대한 요구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법원 밖 목소리를 그만큼 신경쓰게 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①주거불명, ②증거인멸 가능성, ③도주우려 외에 굳이 드러낼 필요없는 이유까지 늘어놓는 것 자체가 판단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론공격 노출…방어막 사라진 느낌"

법조계 일각에선 '법원의 수도승'으로 불리던 영장판사가 폭행사건 하나를 놓고 장황한 논리를 펴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 소재 지방법원 한 판사는 "영장심리이건, 본안판단이건 간에 여론과 동떨어져 소신껏 직업적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게 맞는데 지나치게 눈치를 살피고 있다"고 질타했다.

다른 일선 판사도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본인 실명이 거론되고 진보니 보수니 구분되기 시작하는 걸 보기 시작하면 위축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또 다른 판사도 "양심껏 판단했어도 언론이 자기 입맛에 따라 비판하니 어느 순간부터 판사적 양심을 지켜주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사라진 느낌도 든다"고 했다. /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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