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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꿈에서 깨어나다

등록 2020.06.17 21:48

수정 2020.06.17 21:58

인공지능이 꾸민 가상세계에서 사육 당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들 이야기지요. SF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진짜 현실 같은 꿈을 꿔본 적이 있나.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재작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튿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더라"고 말이지요.

3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민주당이 이런 메시지를 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이 '매트릭스' 2편 포스터의 카피를 갖다 쓴 겁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말할 때 종종 거론되는 것이 장자의 '호접몽'입니다.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돼 즐겁게 날아다니다 깨어나 묻습니다. 나비가 나인가, 내가 나비인가.

남북화해의 상징이라던 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폭파하면서 판문점 선언을 한줌 재로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를 한바탕 백일몽에서 깨워냈습니다.

사실 북한은 단 하나도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핵을 끝까지 끌어안고서 어떻게든 제재를 풀어보려고 갖은 연기를 했을 뿐이라고 지금 온 세계에 싵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뚫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만큼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가 북한을 궁지에 몰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궁지에서 벗어날 길은 딱 하나, 핵 포기뿐입니다.

그동안 온갖 막말과 욕설을 인내하던 청와대가 현실로 돌아온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무례하고 몰상식한 언행을 더는 참지 않겠다"는 경고에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당당한 자세가 천방지축 북한을 다루는 왕도가 아니겠습니까.

판문점선언 비준과 종전선언 결의를 들먹이던 여당도 결국 대북 경고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아직 꿈에서 덜 깬 듯한 말도 들려옵니다, 통일부 장관은 연락사무소 폭파가 "예고된 부분이 있다"고 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했습니다.

설마 그래서 별일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대북정책은 이제 필연적인 전환점에 섰습니다.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꿈에서 깨어났다면 다행한 일이고 새로운 출발은 통일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 쇄신에 있을 겁니다.

6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꿈에서 깨어나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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