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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최고존엄'과 정신건강

등록 2020.06.19 17:51

수정 2020.06.19 18:21

[취재후 Talk] '최고존엄'과 정신건강

/ TV조선 뉴스9 캡처

"미련한 주문을 연설 때마다 제정신 없이 외워댄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사람이 정신은 잘못된 것 아닌가."

북한 노동당 김여정 1부부장이 17일 내놓은 '담화' 말미에 적은 글이다. 문맥상 비방의 상대는 '남조선 당국자', 즉 문재인 대통령으로 풀이된다.

'철면피' '혐오감' '추악함' '귀머거리' '벙어리' '간특함' '구접스러움' '꼴불견' 등 온갖 막말과 조롱이 뒤섞인 말폭탄에서 "정신이 잘못됐다"는 부분은 가장 심각한 수위의 발언 중 하나다.

남북 관계든, 여야 사이든, 국가 간 갈등이든 서로의 '정신건강'을 문제삼는 행위는 인격모독이나 장애인 비하 논란을 떠나 일단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2016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정신상태 통제불능"이라고 비난했다. "권력유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는 이유였고, '위원장'이란 호칭도 붙이지 않았다.

이미 그 전부터 박 대통령을 향해 '미친 암캐' '패륜악녀' 등 욕설을 퍼부은 바 있는 북한은 '최고존엄'의 정신상태에 대한 남측의 도전에 "정신통제불능상태에서 헛소리를 마구 줴쳐댄다"며 반박했고, 며칠 뒤 대남선전매체엔 박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과녁 영상이 등장했다.

후퇴 없는 '정신 싸움'은 국내 정치권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9월 신상진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내 공식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하루빨리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정신 감정을 받으시라"고 발언해 거센 반발을 불렀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당시 "(조국) 장관 임명 문제를 정신감정으로 비약시키는 신 의원이 더 이상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경원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를 향해 "좀 미친 것 같다"고 발언해 한국당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지난달엔 백승주 전 미래한국당 의원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를 향해 "병원을 방문해 정신건강에 대해 감정해볼 필요가 있다"고 비난하자,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반성 없는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 막말"이란 지적을 받았다.

2015년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사건 당시엔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종북타령하는 여당(새누리당) 의원들도 정신감정을 의뢰해봐야 한다"고 주장해 새누리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취재후 Talk] '최고존엄'과 정신건강
북한 노동당 김여정 1부부장 / 연합뉴스


해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6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내각회의에서 백악관을 겨냥해 "정신지체(mentally retarded)가 있다"고 비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하면 말살하겠다"고 맞받았다.

2018년 프랑스에선 법원이 이슬람국가(IS)의 잔인한 폭력 이미지를 공유한 극우정당의 마린 르펜 대표에게 "정신 감정을 받으라"는 명령을 했고, 당사자는 "미쳤다"며 반발한 사례도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민 정신질환 평생유병률(2016년 기준)은 25.4%다.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동안 한 번 이상은 정신질환에 걸린다는 뜻이다. 2016년 한 해 기준으론 성인 470만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가 정신없이 바쁘고, 국내외 정세는 제정신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상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일상화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신사나운 시대다.

국제사회의 통념과는 정신세계가 남다른 북한은 남북교류의 상징에서 '폭파쇼'를 벌여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지도자들을 '멘붕'(mental 崩壞)에 빠트렸다.

악담으로 가득한 김여정 1부부장의 담화는 청와대가 이미 밝힌대로 '몰상식한 행위'이자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이다. 상대를 아무리 비난하더라도 '정신상태'를 거론하는 것은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협박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기점으로 무형적 위협에서 실체적 단계로 변모했다. 작은 오판과 실수가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기인만큼, 정부든 정당이든 근거 없는 '정신승리'는 자제해야 한다.

'대형 도발 이후 대화 국면 전환'은 이미 북한의 상투적 패턴이란 시각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북한의 크고작은 도발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민 모두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시기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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