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현장추적] "포로로 잡혀 죽다 살아왔는데"…유공자 인정 받기 힘든 학도병들

등록 2020.06.25 21:44

수정 2020.06.25 22:41

[앵커]
1950년, 6.25 전쟁 당시, 소속도, 계급도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교복을 입고 총을 들었던 학도병. 이 학도병이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학도병의 마지막 소원을 차순우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앳된 얼굴에 총을 든 십대 학생들. 계급장도, 소속도 없는 제각기 군복을 입었지만 얼굴 표정엔 비장함이 가득합니다.

6.25전쟁 때 38선 넘어 진격한 국군 학도병이 북한 길주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19살 학도병 이능주 씨도 사진 속에 있습니다.

전옥하 / 학도병 고 이능주 씨 부인
"거기 있지. '북에서' 라고 쓰여 있지, 여기!"

하지만 이능주 씨는 6.25 참전 유공자가 아닙니다. 군적 기록 없는 학도병이다 보니, 국가유공자 등록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역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는 이갑주 할아버지도 비슷합니다. 이능주씨와는 같은 마을 친척.

전옥하 / 고 이능주씨 부인
"(남편이) 그 전에 그러시더라고요. 이 서방(이갑주)님하고 같이 갔는데 학도병을, 이북에 무슨 산까지 태극기를 들고 올라갔대요."

국군이 밀리던 1950년 8월 청주사범학교에 다니다 학도병에 자원했습니다. 포항에서 단 3일 훈련을 받고 바로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이갑주
"인민군이 버글버글한 데 데려다 놓고 거기서 사격훈련을 했다니까…"

바로 옆 학도병 전우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이갑주
"총 맞아 죽으면서 '대한민국 만세!' 부르고 그런 전우도 있었어."

강원도 횡성에서 포로로 붙잡혀 북으로 끌려 가다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

이갑주
"(인민군이) '동무들 후퇴하라'며 가는데 나는 호에 드러누워 앉아서 가지를 않았어."

89세 이 할아버지는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거부됐습니다.

본인 기억과 진술 외엔 병적기록과 사진 등 객관적 입증 자료가 없기 때문인데...

국방부 관계자
"병적 기록을 대체할 만한 근거 문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 당시 사진이나, 그 당시 일기…"

전우의 보증도 인정되지만 고령이라 대부분 숨지고 찾기도 어렵습니다.

"사진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누가 살아있으면…"

보상도 필요 없고 현충원에 묻히는 게 단 하나 바람입니다. 

6.25에 참전한 학도병은 약 2만9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몇 명이 유공자로 인정 받았는 지 정확한 통계도 없는 실정입니다.

이 할아버지와 함께 찾은 포항 학도병 훈련장.

"70년 만에 간다니까."

학도병 전적비에 선 이 할아버지는 70년 전 전우들의 기억을 되뇝니다.

"됐어, 난 국군묘(현충원)에 안 묻혀도… 와서 보니까 마음이 후련하다."

현장 추적, 차순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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