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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6·25 70년, 변한 것은 없다

등록 2020.06.25 21:51

수정 2020.06.25 21:59

진시황 이래 중국 사람들은 태산을 성스럽게 여겼습니다. 거기 등산로 암벽에 새겨진 생쥐의 형상입니다. '태산이 울려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태어난 건 생쥐 한 마리'라는 '태산명동 서일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시 한 구절 같지만 원래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한 말입니다. 시를 쓸 때 산처럼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면 생쥐 꼴이 된다는 비유였지요. 이솝우화에도 나오는 그 격언을 중국식으로 바꾼 겁니다.

지난해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평화경제를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며 비난하면서 쓴 표현도 태산명동 서일필이었습니다. '말만 거창하게 하면서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비아냥이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갖은 협박을 퍼부은 목적 중에 하나도, 어떻게든 대북 제재의 숨통을 틔워 보라는 압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대남 위협 열 아흐레 만에 김정은 위원장이 느닷없이 군사행동 보류를 선언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려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고 더 나가면 돌아서기 어려울 거라는 현실적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애꿎은 남북연락사무소만 폭파했을 뿐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의 이례적 후퇴여서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두고는 다양한 분석이 나옵니다. 애초부터 관심을 끌려는 판 흔들기였다, 급한 대로 평양의 뒤숭숭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대내적 이벤트였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우리 정부의 이례적 강경 대응에 움찔했다 등등이지요. 사실이 무엇이든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난 이번 소동으로 북한의 실체가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번만큼은 악역을 여동생에게 맡기고 자신은 선심을 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또 어떻게 나올지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협상이든 압박이든 우리가 원칙을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북한은 언제든 또 이렇게 우리를 농락하려 들것입니다.

소년 병사가 철모에 진달래를 꽂고서 전선의 봄을 기다립니다. 70년 전 애틋한 소년들까지 나서 나라를 지켜낸 덕분에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6.25 70주년, 공허한 말과 유약한 태도로는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되새깁니다.

6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6.25 70년, 변한 것은 없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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