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인간에 대한 예의

등록 2020.06.29 21:50

수정 2020.06.29 22:17

엘리자베스 1세와 셰익스피어가 한 무대에 섰습니다. 낯설고 기묘한 이 연극은 독일 극단 베를린 앙상블이 셰익스피어의 시를 무대예술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그 백 쉰네 편의 소네트 중에 이름난 시가 이 94번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묻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고귀한가?" "남을 해칠 힘이 있지만 해치지 않고, 남을 감동시키면서도 스스로 돌처럼 견고한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름 꽃의 달콤한 향기도 행실에 따라 시큼해지기에, 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냄새가 고약하다"고 했지요.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게는 품격이 있습니다. 입 구(口)자가 세 개 모여 품(品)자를 만들듯, 입에서 나오는 말이 쌓여 품격을 이룹니다. 말은 마음이 내는 소리입니다.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죠"
"새삼 지휘랍시고 해가지고"
"법 기술을 부리고 있다는…"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쏟아낸 말 말 말입니다. 저잣거리에서 들을 법한 모욕적 언사가, 설마 나라의 장관 입에서 나왔을까, 귀를 의심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법무부와 검찰의 협력을 당부한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추 장관은 '이렇게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은 처음 본다'고도 했습니다만 검찰총장은 정부 외청의 수장 중에 유일하게 장관급입니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 집무실에 가지 않고, 장관 주재 행사에도 대검차장을 보내는 게 관례입니다. 검찰총장의 위세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장관에게 휘둘려 일처리를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난 관행일 겁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검찰총장이 검찰 출신이 아닌 자신을 무시해서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검찰 개혁을 갖다 붙입니다. 결국 여당에서까지 "추 장관의 거친 언행에 말문이 막힌다"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한 여당의원은 "30년 법조 생활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광경"이어서 "임명권자에게도 부담이 될까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추 장관은 본질은 검찰 개혁인데 언론이 자신의 말만 가지고 시비를 건다고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검찰 개혁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개혁이 될지 개악이 될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추 장관은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만 자신의 거친 언사야말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동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꽃처럼 사람도 향기가 있는 법입니다.

아흔아홉에 떠난 노시인의 꽃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지요.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6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인간에 대한 예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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