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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주호영의 인묵(忍默)과 필주(筆誅)

등록 2020.07.01 14:56

수정 2020.07.01 14:58

[취재후 Talk] 주호영의 인묵(忍默)과 필주(筆誅)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 연합뉴스

▲ 인묵(忍默)

그는 차 한 잔을 권했다. 카페인 없는 발효차라고 했다. 사찰에서 가져왔다는데, 내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밤 9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벽에는 인묵(忍默)이란 붓글씨가 보였다. 멋 부리진 않았지만 힘이 느껴지는 필체다. 휘호라고 하기엔 액자도 없이 화선지를 셀로판 테이프로 툭, 무심하게 붙여뒀다. 참고 또 참으려고 많이도 애쓰는 가보다.

▲ 통합당 3선 절반이 "상임위 다 줘라"

여야의 원 구성 협상이 결렬되고,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 전석을 가져간 지난 29일. TV CHOSUN <뉴스9> 생중계 인터뷰를 마친 주호영 원내대표에겐 남은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민주당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통합당에 돌렸다. 초기엔 '당내 강경파'에 주 원내대표가 떠밀리고 있다는 취지로 말하더니, 최종 결렬 이후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비토'했다고 의심한다.

주 원내대표는 '인묵'을 깨고 말했다. 29일 협상장에 들어가기 전 3선 의원 전원의 의사를 물었다고 한다. 상임위원장 후보였던 통합당 3선 의원은 총 14명(이종배 정책위의장 제외)이다.

딱 절반인 7명이 "법사위가 없으면 18석 전석을 민주당에 주라"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4명은 주 원내대표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고, 민주당이 제안한 11:7 상임위 배분안대로 "협상하자"는 의견은 3명이라고 했다. 당내 다수 의견에 따른 것이란 취지로 '김종인 비토설'을 일축한 것이다.

3선 의원들 절반이 상임위원장을 안 맡아도 좋다는데, 심지어 5선의 정진석 의원은 국회 부의장까지 포기하겠다는데, 주 원내대표 입장에선 법사위원장 없는 협상안을 들고 의총장에 들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 치열했던 협상, 못 다한 얘기들

법사위를 가져오는 것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여야 원내대표 협상 테이블엔 다른 옵션도 오갔다. 대표적인 게 국정조사 요구다.

주 원내대표는 국정조사 2건을 요구했다. 윤미향 의원·정의연 논란과 존 볼턴 미국 전 NSC보좌관 회고록으로 촉발된 대북정책 관련이다.

대북정책은 박병석 의장이 중재해보겠다고 했으나 김태년 원내대표가 거부했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다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요구했으나 다시 거부당했고, 이후 '한명숙 위증교사 의혹'을 요구해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대법관 전원이 유죄 확정판결을 했지만, 민주당 일각에서 아직도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라고 주장하니 한번 따져보자는 취지라고 한다. (한 전 총리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국정조사나 청문회가 이뤄졌다면, 한 전 총리에게 달가운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다만 법사위 관련 입장을 좁히지 못해, 이같은 국정조사 합의는 결국 없던 일이 됐다.

▲ 그리고 필주(筆誅)

그는 협상 파트너인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보다도 '중재자'인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섭섭함이 더 많아 보였다. (앞서 주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박 의장이 상임위원 명단을 내라고 독촉하자 "의장실 탁자를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썼다)

이번 협상 결과와 국회의장·민주당에 대해서는 '필주(筆誅)'할 것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붓으로 치다(벌을 내리다)'는 의미다. 조선시대 사관(史官)의 평가를 '필주(筆誅)'라고 했다. 176석 거대 여당 앞에서 속수무책이지만, 반드시 역사에 평가를 남길 것이란 다짐으로 보인다.

협상용 엄포였든 진심이었든 "상임위원장 18석을 모두 갖겠다"는 민주당의 말은 현실이 됐다. 앞으로 4년 내내 통합당은 103석을 갖고도 '인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는 21대 국회를 어떻게 '필주'할까. / 김수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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