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국가란 무엇인가

등록 2020.07.08 21:48

수정 2020.07.08 22:01

1994년 북한을 탈출한 육군 소위 조창호가 국립현충원 지하 위패봉안실에 섰습니다. 거기 모신 10만여 위패 중에 '소위 조창호'를 검은 테이프로 덮었습니다. 죽은 이가 대명천지로 나서는 순간이었습니다.

6.25가 터지자 대학생 조창호는 "국가 존망위기에 사내가 무엇하느냐"는 어머니 말씀에 자진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포로가 돼 43년 동안 외웠던 군진수칙을 전역식에서 외쳤습니다. "죽어도 항복하지 않는다. 포로가 돼도 전력을 다해 탈출하겠다…"

그는 서울 음식점에서 옥수수 버터구이가 나오자 얼굴이 일그러지며 치우라고 했습니다. 북에서 그는 전향을 거부해 아오지 수용소와 광산을 전전하다 규폐증으로 곡괭이를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몰래 화전을 일궈 하루 세끼, 십몇 년을 옥수수로 연명했던 겁니다.

그에겐 국군포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한으로 남았습니다. "이래서는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겠느냐"고 말하곤 했지요.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서는 "우리 정부가 있는데 미국에서 증언하는 게 비참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충원에 잠든 그가 들었다면 벌떡 일어나 눈물로 반길 소식이 나왔습니다. 탈북 국군포로 두 분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강제노역 배상판결을 받았습니다. 우리 법정에서 북한의 민사책임을 물은 첫 판결입니다.

법원은 북한을 국가가 아닌 단체로 규정하고, 원고측이 청구한 2천백만원씩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청구액이 적었던 것은 돈보다 명예회복과 한풀이 소송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소송지원단체) 물망초(재단)를 제외하고는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이게 난 섭섭하더라고요"

원고측은 당장 배상을 받아낼 계획입니다.

법원에 공탁돼 있는 북한 방송영상 저작권료를 겨냥하고 있어서 압류와 추심에 별 무리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실제 배상까지 이뤄지면 또 하나 획기적 선례가 될 겁니다.

이번 판결은 국군포로, 납북자는 물론 천안함 폭침 같은 북한 도발 피해자, 폭파된 남북 연락사무소까지 폭넓은 대북 배상청구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법원은 이번 판결로 북한에 대해서도 당당히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라는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런데 통일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지극히 건조한 반응을 냈을 뿐입니다. 과연 우리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7월 8일 앵커의 시선은 '국가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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