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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추미애의 판정승이냐, 패착이냐…윤석열, '쟁송절차' 첫 언급

등록 2020.07.09 11:54

수정 2020.07.09 13:36

일찌감치 수가 읽혔다. 서로 패를 알았지만 예상대로 움직였다. 대결 내내 공격과 수비도 바뀌지 않았다. 싸움의 방식만 달랐다. 공격하는 쪽은 시종일관 퇴로를 끊는 외통수로 압박했다. 방어하는 쪽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 VAR(비디오 보조심판)을 요청하듯 주요장면 기록만 꾸준히 남겼다. 왜일까.

답은 이번 공수(攻守) 대결의 끝에 암시돼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조율한 절충안을 "장관에게 보고된 바 없다"며 단칼에 거부했다. 각자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을 놓고 벌인 시합이었지만, 애초 경기 스코어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인정한 대목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이미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장관의 지휘는 달성된 상태라며 "쟁송절차에 의한 취소"를 처음 언급했다. 전반전을 마친 두 사람 모두 이번 대결의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한 셈이다.


■ 尹 "쟁송절차로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

"[대검찰청 대변인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채널A 사건 관련입니다.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 발생. 결과적으로 중앙지검이 자체 수사하게 됨. 이러한 사실 중앙지검에 통보필(必)."

9일 오전 대검이 내놓은 입장문이다. 지난 2일 추 장관이 PDF파일로 공개한 '채널A 관련 강요미수 사건지휘'가 나온 뒤 윤 총장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 이미 지시 목적대로 달성됐다는 내용이었다.

전날 추 장관의 시한부 최후통첩에 대한 답변으로 독립수사본부 구성까지 건의했지만 그마저도 부정당했으니 중앙지검 자체 수사로 가게 됐다는 설명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은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 발생"이다. 법조계에선 윤 총장 입에서 권한쟁의심판이 처음 언급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 법조계 인사는 "부당한 명령은 따를 수 없다는 게 윤 총장의 변하지 않는 입장이다. 나갈려면 벌써 나갔을 것이다. 이제 윤 총장에게 남은 건 법에 의해 명명백백히 가려보자고 나서는 수 밖에 없다. 장관 처분이 위법부당해 따를 수 없으니 가만히 있음으로 일단 파국은 면했지만, 법원이든 헌법재판소든 어디에서라도 판단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 秋의 '패착'?…수사기록 쌓듯 근거 남긴 尹

사실 추 장관이 이날 오전 10시 시한을 통보했을 때부터 검찰 안팎에선 윤 총장의 직무배제와 감찰착수를 지시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장관 지시를 따르면 윤 총장 스스로 위법·부당한 선례를 만들었다는 부담감에 물러날 것이고, 어기면 징계절차에 착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윤 총장은 검찰 총의를 모으는 검사장회의 개최에 이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장관 지시를 거부하지도 수용하지도 않는 모양새를 취했다. 결국 추 장관 스탭만 꼬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은 입장문을 통해 이례적으로 7년전 윤 총장의 직무배제 상황을 이렇게 언급했다.

"사실 총장은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음."

추 장관은 "만시지탄"이라며 당시 윤 총장의 소신을 채널A 수사팀 소신에 비유해가며 비꼬았다.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당시에 총장이 느꼈던 심정이 현재 이 사건 수사팀이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고 총장이 깨달았다면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함이 마땅함."

다만, 쟁송절차 언급에 대해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검사장회의를 통해 "검찰총장 지휘감독 배제 부분은 사실상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이므로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결론내리는 등 법리상 추 장관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윤 총장은 마치 장관 직권남용 수사와 재판을 염두에 두기라도 하듯 차곡차곡 근거를 쌓아왔다.


■ 尹, '권한쟁의' 만지작…최강욱 논란에 '술렁'

추 장관과 윤 총장 모두 외견상 파국은 피했지만, 검찰 안팎에선 더 큰 태풍을 앞둔 전야같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법무부와 검찰 수장이 대립국면에서 마지막 선택을 고심하던 과정에서 법무부 입장문 가안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게 유출된 정황이 불거진 것도 후반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추 장관 지시대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채널A 사건 수사를 계속 진행하게 됐지만, 수사심의위원회에서 편파수사 논란에 대한 판정을 내릴 것이란 예상도 제기된다.

다른 법조계 인사는 후반전을 이렇게 전망했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쟁점은 장관조차 팩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을 부른 사건의 실체는 의외로 쉽게 수사심의위에서 결론날 수 있다. 문제는 채널A 사건이 아닌 윤 총장의 거취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공세 뒤에 대통령의 뜻이 있다는 걸 알고도 버티는 건 진행중인 수사와 검찰조직을 위해 안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중요사건을 지휘해야 하는데 직무정지될 경우 곧바로 권한쟁송에 나섰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조만간 법적대응에 돌입할 것으로 본다." /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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