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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대법 파기환송 결정에 곤혹스러운 검찰…은수미 '면죄부' 누가 줬나

등록 2020.07.10 13:28

[취재후 Talk] 대법 파기환송 결정에 곤혹스러운 검찰…은수미 '면죄부' 누가 줬나

/ 연합뉴스

지난 9일 은수미 성남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다시 심리하라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검찰은 곤혹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은 시장은 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으면서 시장직을 잃을 위기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검사의 적법한 항소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2심 판결을 깨고 수원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에선 항소장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은 시장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실수가 은 시장에게 면죄부를 안겨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검찰 내부에선 이번 파기환송심의 책임을 오롯이 안고 가는 건 억울하단 목소리도 나왔다. 왜일까?

■ 검찰 "은수미, 조직폭력배가 제공한 차량 이용"

앞서 검찰은 은수미 시장을 2016년 6월 15일부터 2017년 5월 25일까지 성남지역 조직폭력배 출신인 이 모 씨로부터 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은 시장은 20대 총선에 낙선한 뒤 각종 라디오 방송이나 토론회 등 주요 정치활동에 나갈 때 이 차량을 이용했다.

검찰은 이를 차량을 제공받아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와 차량 기사의 월급을 지급한 이 씨의 법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분했다.

■ 똑같은 유무죄 판단, 달라진 양형

1심은 차량을 제공받은 첫 번째 혐의는 일부 유죄로 봤지만, 이 씨의 법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두 번째 혐의는 무죄로 봤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론 은 시장이 이 씨의 법인이 제공했단 사실을 알았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단 거다.

그래서 당선무효의 기준인 벌금 100만원에 못 미치는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또한 유무죄 판단은 같았다. 다만 2심 재판부는 형량만 높여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원봉사를 해준 것이고, 자신에 대한 정치적 음해'라는 은 시장의 주장은 변명"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형량을 올렸다.

■ 대법원 "검찰 항소이유가 구체적이지 않다"

대법원에 따르면 검찰은 항소장에 "1심이 두 번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건 사실 오인에 해당하고, 이 점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면 1심이 선고한 벌금형 90만원은 지나치게 가볍다"고 항소이유를 썼다고 한다.

대법원은 이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혐의에도 유죄로 판단된다는 걸 전제하고서 '양형 부당'을 주장했는데, 2심 재판부가 여기엔 무죄를 선고하면서 은 시장의 형량만을 올린 건 위법이란 것이다.

한 현직 판사는 "이런 문장 구조로 양형 부당 사유를 작성하면, 벌금 90만원이 나온 첫 번째 혐의의 판단에 대한 항소 이유는 쓰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또한 기자들에게 배포한 설명자료 첫머리부터 "양형에 관하여 검사의 적법한 항소이유 주장이 없었다"고 못 박았다.

■ 억울한 검찰 "항소장 그렇게 허술하게 쓰지 않았다"

은수미 시장이 위기를 모면한 건 검찰 탓이란 지적이 쏟아지자 검찰 내부에선 억울하단 반응이 나왔다.

이 사건을 다뤘던 검찰 관계자는 "애초에 벌금 90만원이 선고된 첫 번째 혐의에 대한 양형에는 수사팀 내부에서도 이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1심에서 검찰이 구형한 벌금 150만원에 대해 절반 이상의 형량인 90만원이 선고됐고 이는 납득할만한 수준이란 거다.

실수를 한 것은 반대로 2심 재판부가 아니냔 주장도 나왔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무죄 부분에 대한 1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항소를 한 건데,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바꾸지 않고 양형만 높인 건 2심 재판부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2심 재판부의 급발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양형부당'에 관한 항소 이유를 꼼꼼하게 봤단 주장도 나왔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사실 관례적으로 일부 무죄가 나온 사건을 항소할 때 양형부당 사유를 그렇게 공들여 작성하지 않는데, 대법원이 이렇게 꼼꼼하게 볼 줄은 몰랐다"며 "앞으로는 이 부분을 간과하지 말라는 선언적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구체적인 항소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항소장은 적법하지 않다는 판단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기사회생(起死回生)한 은수미

9일 대법원의 판결로 은 시장은 앞으로 2년 남은 성남시장 자리를 그대로 지켜낼 가능성이 커졌다. 재판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그런데 뒷맛이 영 좋지 않다. 언론이 조직폭력배로부터 차량을 제공받았단 의혹을 제기하자 은 시장은 "정치적 음해이자 음모"라며 맞섰다. 심지어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냈다가 패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은 시장은 선거에서 이겼고 재판에서도 이겼다. 끝까지 버티면 이길 수 있단 선례가 또 다시 생겼다.

은 시장을 제외하고라도, 자신을 겨냥한 의혹 제기에 정치인들은 성심껏 해명하는 대신 '정치적 음해'나 '언론의 왜곡'이라고 맞서왔다.

'버티면 살아남는다'는 선례가 쌓인 것이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어쩌면 은 시장의 '면죄부'가 누구의 실수에서 비롯됐는지 따지는 건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최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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