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슬픈 조화(弔花)의 정치학

등록 2020.07.15 21:48

수정 2020.07.16 20:41

2012년 정치에 발을 디딘 도종환 의원에게 화분이 배달됐습니다. 검정 '근조' 리본이 달린 조화였습니다. 그는 '이제 시인 도종환은 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꽃들이 쭉 늘어서서, 슬퍼하는 척하는 조객들을 구경하다… 바닥에 버려져 짓밟히면 아무도 모른다…"

조화란 그런 운명이지만 화학처리를 거쳐 고이 보관된 것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장례에 북한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각기 보낸 조화입니다. 시인은 장례식장 조화에서 권력을 봅니다.

"이름표 하나씩 달고, 저마다 어색하게 서 있다… 이름표가 권력인 이곳, 조화가 조화를 밀어내고 있다…" 

지난 열흘만큼 대통령 조화가 논란의 복판에 선 적도 없었던 듯합니다. 먼저 안희정 전 지사 모친상에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자 여성계를 중심으로 "성범죄자 감싸기"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피해자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항의 표시로 청와대에도 책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반송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논란이 일었습니다. 박원순 시장 빈소에 보낸 조화는 또 고소인에게 어떤 것이었을까요. 변호인은 "꽃이 누군가에게는 비수다. 조화가 피해자에게 주는 메시지도 고려하는 게 대통령 자리" 라고 했습니다.

6·25 영웅 백선엽 장군 빈소에도 대통령 조화가 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박 시장 유족에게는 "참 오랜 인연을 쌓아온 분"이며 "너무 충격적" 이라는 말을 전했지만 백 장군이 묻힐 때까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까지 애도 성명을 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끝내 침묵했습니다. 거기에다 광복회장이라는 분은 백 장군을 영웅으로 부른 주한미군 사령관이 내정간섭을 했다며 트럼프에게 소환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백 장군이 우리 민족 북한을 향해 총을 쏜 공로로 현충원에 묻히느냐"는 라디오 진행자 말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습니다. 

오늘 백 장군 영결식에도 청와대-여당의 무게감 있는 지도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6·25 70년을 맞아 다짐했습니다. 

"정부는 국민과 함께 호국의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과 보름 뒤 구국의 영웅에게는 곧 버려질 조화 하나 보낸 게 다였습니다. 7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슬픈 조화(弔花)의 정치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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