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피해를 호소하다니요

등록 2020.07.16 21:52

수정 2020.07.16 21:57

"내 이름은 '머리에 부는 바람'이다…"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 나오는 인디언 이름들은 사뭇 시적이고 철학적입니다. 주먹 쥐고 일어서, 열 마리 곰, 두 개의 죽음…. 주인공 이름 '늑대와 춤을'도 인디언이 붙여줬지요. 이름들에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여겼던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만화에서 외계인이 붙인 이름들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심각한 옷'은 넥타이, '높은 경사로'는 하이힐, '광대한 원형 반죽'은 피자랍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낯선 시선에 슬쩍 웃음이 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는… 꽃이 되었다…"

명시 '꽃'은 빛깔과 향기에 걸맞은 이름을 불러줘야 바로 선다고 했습니다. 거꾸로 엉뚱한 이름을 붙이면 존재도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이름 바로 부르기를 국정의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피해 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피해 호소 직원과 함께하고자…"

여당 대표와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 고소인을 약속이나 한 듯 피해 호소인, 피해 호소 직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전에도 없는 말, 호소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쓴 것이 그저 우연일까요. 

잘 아시듯 지금까지 성추행 사건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피해자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작위적인 이름 호소인을 들고 나온 데 대해 민주당은 "법적 방어를 할 가해자가 없기 때문" 이라고 했습니다. 가해자가 사라지면 피해자도 없어진다는 뜻인지, 제 상식으론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런 경우 호소인이라고 규정을 하고 나면 '피해자의 고소가 일방적 주장' 이라는 어감이 금방 느껴집니다. 거대 집권당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압축돼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매우 공공연한 2차 가해라고 봅니다.

민주당은 진상 규명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국민의 눈은 서울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제기한 은폐, 방조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측근들이 일찌감치 대책을 논의한 정황도 잇따라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 평등을 구현한다는 이른바 젠더특보는 피해 직원은 뒷전이고 시장실부터 달려가 귀띔해주고 챙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당과 서울시가 굳이 '피해 호소 직원' 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낸 저의를 의심하게 됩니다.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피해자를 피해자로 대접하고 수사에 준하는 강력한 조사 의지를 보이는 게 옳을 겁니다.

7월 16일 앵커의 시선은 '피해를 호소하다니요'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